유품정리

by 김민재

고향집 아버지 유품 정리를 한다.


홀로 단출하게 꾸려온 삶이라 살림살이가 별로 없을 것 같았던, 90 평생의 무게가 집안 가득 고요와 적막으로 쌓였다.


아끼고 아껴 입지 않은 속옷과 새 옷들 서랍장에서 꿈틀거리는 안타까움에 내 감정 함께 뭉쳐 검정 비닐봉지에 담는다. 아껴서 남겨진 슬픔이다.


세탁소 포장 비닐 뜯지도 않은 양복에 핀 곰팡이 입어보지 못한 채 떠난 아버지가 내 몸 어딘가에 붙어 꿈틀 거리는 것 같은 아픔이다.


언제 방문할지 모를 자식들 위해 쌓아둔 장롱 층층의 이불들 내 심장을 찌르며 쳐다보는 것 같아 얼른 보자기로 내 마음 감추듯 꽁꽁 동여맨다. 그리움에 저장된 세월의 더께가 무겁다.


아버지의 생을 따뜻하게 데워준 돌 침대와 돌 소파의 무게는 등짐 지고 온 생을 말하는 듯하고, tv는 세상에 없는 어머니 대신 동반자가 되어준 시간 속 외로움의 얼룩을 지웠을 것이다.


어머니 사후 13년 한 번도 쓰지 않은 그릇들과 붉은 고무 통 간수 빠진 소금 베란다 한 끝에 저장해 놓고 버리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어 나는 또 알 수 없는 감정에 얽히고설킨다.


그리 살갑지 않은 딸, 다정다감하지 않은 무뚝뚝한 딸. 곱살스럽지 않은 엄마를 닮은 나는 늘 그랬다. 그런 아쉬움이 많아서일까 마지막 유품정리로 아버지의 체온 느끼며 보내드리고 싶은, 하지만 구서구석 아버지의 모든 것들이 나를 파고 들어와 수많은 내가 나를 짓누르는 회한이다.


모든 세간들이 버려진 집 먼지 속에 있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에 휩싸여 살고 있는가를 바라보게 한다. 꼭 필요하지 않아도 버리지 못하는 것들과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 사이에 쌓인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 안에 담긴 소란과 온기를 지운다.


아버지가 없는 아버지 집 거실 안으로 쏟아지는 햇볕 속에서 부서지는 빛들이 먼지를 날리고 나는 허리 굽혀 먼지를 쓸며 다시 들을 수 없는 아버지 생전의 말씀들 쓰레받기에 모은다.

먼지처럼 버석거리는 말씀들. 어둠과 빛이 모아 그 끝을 잡아도 다시 풀어낼 수 없는 말들은 별이나 달에 닿아 안착할까 아니면 우주에서 떠다닐까


아버지를 보낸 슬픔의 무게가 버거워서 버리고, 남겨진 자의 눈물이 무거워서 버리고, 언제일지 모를 내가 없는 나를 생각하며 집에 돌아가면 이제 것 쌓아온 버리지 못한 것들 정리하여야겠다.


문보영 작가는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 무언가를 하나씩 버려보면 버리지 못해 붙잡고 있던 것들을 버려도 그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깨닫게 된다.’고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에서 말하고 있다. 아버지가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혹은 추억들을 정리하면서 내 추억도 함께 버려진 기분이지만 이 또한 아버지와의 작별을 위한 과정이겠지. ‘물건을 버려 마음을 비우고 다시 그 안에 확실한 행복 채워 넣는 것’ 작가의 말처럼 슬픔을 버리고 나를 그 안에 행복을 채워 넣으며 살고 싶은 남아 있는 자의 희망사항 아닐까.


부모님은 임실 호국원에 모셔서 더는 오지 않을 다시 올 수 없는, 고창 그리고 고향집.




인선, 순영언니와 이슬비 부슬부슬 내리는 시골길 달린다. 미처 떠나지 못하는 겨울처럼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아버지와 슝슝 거리는 마음 붙잡지 못한 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봄의 풍경을 마음대로 색칠해 가며 스며든 ‘책 마을 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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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였던 해리초등학교 나성분교에 이대건 촌장의 꿈이 담긴 책 마을 해리.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워 고창에 내려올 때마다 오고 싶었던 곳을 아버지가 안계서 다시 올 일 없는 오늘에서야 나는 북 카페 ‘책방해리’에 들어선다. 먹구름 가득 하늘에 이슬비로 한기를 적시고 으스스한 몸 8,000원의 입장료로 녹여본다.


잡초 무성한 폐교를 구입하여 다듬고 가꾸며 잡초처럼 지나온 세월 속 고단함이 녹여진 곳. 기증받은 책 20만 권으로 교실을 터서 동학평화 도서관, 책 숲 시간의 숲, 버들눈도서관, 책 감옥, 문학 숲, 한지활자공방, 등 전시관과 공방을 꾸민 촌장의 10여 년 노고가 숨 쉬고 있는 발자국 한발 한발 딛는 순간마다 ‘대단하다’ 그리고 무슨말이 더 필요하리.


건조한 마음이 마른 잔디로 푸석거리는 운동장은 부엉이광장을 배경으로 동학평화 도서관 플라타너스 나무에 매달려 봄을 기다린다.


젖은 우산 오전을 접으며 들어선 복도 아이들 신발이 웅성거렸을 신발장 대신 책장 가득 책들만 서로 마주 보며 방문객을 기다린다.


‘책숲 시간의 숲’ 조명등 옆 오래된 타자기 장식은 추억의 문서를 타이핑하겠지만 고요하고, 책장 가득 채워진 수만 권의 책 나무들의 숨소리가 소란스럽게 한다.


‘책 감옥’에 수감되어 몇 날을 아무 일 없는 듯이 지내고 싶은, ‘바람의 언덕’에 앉아 느끼고 싶은 초록이 녹음이 색채가 풍경을 이루는 계절까지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전시된 탈곡기에 탈탈 털고 나오는 길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대건 촌장과 잠깐의 인사다.


어제는 아버지의 유품 버리고 비우는 시간으로, 오늘은 책 마을에서 작가들 창작의 고뇌가 가득 채워진 책들 눈으로 저장하고 가슴으로 채운 시간. 지난해 12월 담양 ‘글을 낳은 집’ 입주 작가로 머물 때 김규성 촌장 및 입주 작가들 이야기 속 주인공이 궁금하였는데 이렇게 마주친다. 출장 가는 중이라 바쁘게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책마을 해리’를 조성하기 위한 그간 노고의 어깨가 깊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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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

떠남과 만남.


그 어디쯤에 나를 나의 바깥으로 놓아두고 아산면 건너고, 심원면 지나, 해리면 머물다, 흥덕면 찍고, 신림면 까지 고창군내 반 바퀴 돌아온 언니들과 셋이서 대구탕국물에 마음 온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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