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해남

-백련재•1

by 김민재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마음처럼 기다림의 시간이었던 오늘. 설렘 가득 싫은 버스는 해남 버스터미널에 날 부려 놓고 완도로 떠난다. 캐리어의 무게만큼 가슴은 뛰었고 일 년 만에 다시 온 해남은 어떤 무게를 나에게 짐 지어줄지 모르겠지만 가벼움이든 무거움이든 두 달이라는 나에게 온 모든 시간들을 가슴에 안으며 백련재 문학의 집으로 향한다.


달리는 택시 창문을 열어 본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해남만의 향기와 오롯이 홀로 가질 수 있는 기쁨의 냄새다. 코스모스 꽃 지고 마른 꽃대 열 지어 노닐고 있는 사이로 아직 푸른 잎에 살짝 고개 내민 코스모스 바람에 장단 맞춰 노래한다. 아침 용인에서 출발할 때 추위에 떨었던 시간이 주는 차이와 남쪽이라는 거리가 가져온 간격의 차이는 나를 당황하게 할 정도로 11월의 날씨가 덥다.


문학의 집 들어오는 길목에 은행나무 네 그루가 두 그루씩 외롭지 않게 마주 보고 입주 작가들의 발자국 소리로 단풍 들고 작가들의 말소리로 알맹이 여물어가고 있다. 아직은 푸르고 무성한 잎들이 속살을 드러내지 않으려 움츠리고 있지만 은행잎 노랗게 단풍 들고 알맹이 여물어지면 구워서 작가들과 나눠먹어야지 입실하기도 전 설레발이다.


20251124_142554.jpg 백련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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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6_100449.jpg 수水, 송松, 석石, 죽竹, 월月과 난蘭, 매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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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4_142213.jpg 문학의 집 입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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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4_151904.jpg 녹차잎과 은행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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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재 문학의 집에 머무는 동안 어떤 글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나만의 공간 석石실에 안착한다. 문학의 집 작가들의 방 이름은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에 나오는 자연의 다섯 벗을 노래한 수水, 송松, 석石, 죽竹, 월月과 난蘭, 매梅의 이름표가 있다.


햇볕, 그 달콤함이 묻어나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어수선한 생각들 걸러내는 시간이 즐겁다. 시가 써지지 않아 뭉그적거리며 지나온, 목 디스크 통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먼 길 떠나신 아버지 빈자리에 마음의 바깥을 서성거렸던, 그 모든 것들 이곳의 햇살은 또 다른 설렘을 안기며 나를 들여다보게 한다.


땅끝순례문학관 2층 북카페는 나와 내가 만나는 장소이다. 백련재에 머무는 동안 함께 할 쉼터이고 작업실이고 독서실이다. 아침에는 전통 한옥문살로 쏟아지는 빛들이 의자를 데워주고, 수련누각에서 바라보는 연못 한가운데 우뚝 선 소나무 한그루와 햇볕에 연잎 녹아내는 한낮을 지나 덕음산이 고요로 물들어가는 시간 북카페에서 바라보는 연동마을의 석양빛은 마을 입구 석류나무의 입 벌린 석류알맹이 같다. 이곳에서 읽고, 쓰고, 지우며 산란스런 마음을 재우고 오직 나로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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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4_144246.jpg 녹차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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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4_145235.jpg 녹차꽃
20251121_104334.jpg 해남읍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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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0_172459.jpg 덕음산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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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날이면 해남의 냄새와 전라도 구수한 사투리 만나러 시장 간다. 백련재에서 장이 서는 곳까지 해찰하며 걷다 보면 한 시간 삼십 분은 넘는다. 햇살 따갑게 등짝에 꽂히는 무더운 날씨다. 들풀 사이 도깨비풀 씨앗 치마에 다닥다닥 붙어 떼어내며 내 안의 응어리들 함께 거둬내면서, 콕콕 찌르는 도깨비풀 씨앗 같은 시가 오기를 바라면서, 걷다가 농로에서 길이 끊겨 다시 되돌아오고 추수 끝난 질퍽한 논 한가운데를 서성거리다 방향감각을 잃고 대각선을 긋기도 한다. 동백꽃봉오리 금방이라도 터질 듯 수줍음이 있고, 억새꽃 하늘하늘 손 흔들고, 녹차 밭 지날 때면 하얀 녹차 꽃 손짓하는 향긋함이 있는 읍내 가는 길 고요와 소요 그 어디쯤 잠시 나를 세워둔 위로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침, 저녁 녹우당 산책길 먼나무 붉은 열매 주섬주섬 주머니에, 마을 울타리 황국 꺾어 작가들 방문 앞에, 카페 「마실」에 마실 나가는 오후와 대흥사 단풍구경 길 유선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 어란항의 뱃고동 소리와 드넓게 펼쳐진 전복과 김 양식장의 반짝임들. 그 안에 작품으로만 알았던 서효인, 고재종, 손택수, 이대흠 시인의 모습들은 처음이었지만 다음이 아니어도 즐거움이었다.


해남에서의 나의 시간들 주섬주섬 에코 백에 담아본다. 해남은 박성룡 시인의 시처럼 「풀잎」 같고, 백련재는 이동주 시인의 「강강술래」이며, 북카페는 김남주 시인의 「돌멩이 하나」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고정희 시인의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가 녹여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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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4_150517.jpg 북카페 수련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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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5_102855.jpg 북카페 내부
20251212_143123.jpg 북카페 누각에서 바라본 덕음산
20251203_105050.jpg 북카페의 아침햇살
20251106_150307.jpg 북카페에서 바라본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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