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재 •5
‘두 집 살림’은 두 곳에 거주하며 생활하는 현대적 ‘듀얼-레지던스’ 의미이다. 전통적·법률적 의미는 부정행위·중혼을 가리키는 점과 다르다는 뜻이다. 작가들 또한 2~3개월에서 6개월~1년까지 작품 활동을 위해 작가 레지던스에 입주하여 글을 쓰면서 자연적으로 두 집 살림을 하게 된다. 이제는 ‘두 집 살림’이라는 말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백련재 문학의 집 레지던스에 입주 작가로 선정되어 이곳에 머물면서 25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마지막 주말과 월요일 이틀간 백련재 상주작가의 두 집 살림 편에 이언주 작가와 함께 출연하게 되었다. 26년 새해를 여는 1월 2일 방영될 KBS 2tv 생생 정보 ‘두 집 살림’ 해남 편이다.
출연소식을 들은 우리는 막막하였다. 준비된 옷이 없어서 고민이었다. 편리함을 가장하며 늘 운동복 바지에 후드티 차림과 우중충한 원피스로 지내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방송된다는 부담감에 우리의 고민은 인터뷰 걱정보다 옷차림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급하게 바빠 사이트 검색이다. 촬영 하루 만에 도착할 내가 원하는 옷은 없다. 있는 옷이 후줄근하여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상주작가의 빨강 티셔츠와 언주 작가의 초록티셔츠는 도착 가능하여 그 옷을 입고 촬영할 수 있었다. 빨강, 파랑, 초록 옷의 우리들은 신호등이다.
백련재 작가의 방 소개는 작가들이 두 집 살림을 할 수 있는 옷장, 책상, TV, 냉장고, 에어컨, 인덕션의 주방시설과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으며, 텃밭에는 상추, 무, 양배추, 대파, 당근, 시금치, 콜라비 등 언제든지 요리할 수 있게 잘은 아니지만 자라고 있다. 걸음 없는 척박한 땅에 무농약의 채소들은 벌레들의 합숙소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상추와 당근 밭에서 서성인다. 옷 곧게 잘 뻗은 당근을 기대하고 뽑지만 항상 짜리 몽당 그래도 맛은 있다. 유통과정 없는 신선도는 갓 수확한 채소들만 갖는 자랑이다. 우리가 무생채와 당근과 상추로 비빔밥을 양푼에 휘 젖고 있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당근을 뽑을 때마다 안희연 시인의 ‘당근밭 걷기’에서 ‘주황은 난색이요. 약동과 활력을 주는 색’이라고 시인이 표현한 문장을 생각하며 ‘26년 새해 약동과 활력을 주는 방송을 위해 카메라와 함께 당근을 뽑는데 뭔 일이 랑가 당근도 카메라를 의식하였는지 가장 잘생기고 길쭉한 당근이 뽑아진다. 늘 연리지 나무처럼 비비 꼬여진 당근에서 이제껏 내가 수확한 최상의 당근과 콜라비로 마루에 앉아 먹으며 우리들의 일상을 촬영한다. 자리 이동을 위해 일어서며 이효리 피디에게 건네는 당근이 피디에게는 ‘짧은 이야기가 끝난 뒤/비로소 시작되는 긴 이야기로서’ 시인의 마지막 문장을 카메라에 담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이유리 학예사의 문학관 소개 후 해남매일시장 간다. 갓 잡아 튀긴 통닭을 주문한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장 통닭은 쫄깃쫄깃한 살과 고구마와 함께 튀겨서 나오는데 체인점 통닭의 맛과 사뭇 다르다. 입 짧은 내가 잘 먹었던 잊을 수 없는 통닭이다. 시장 입구 국화빵은 호떡 맛이 나는데 일반적인 팥이 들어있지 않다. 시장 구석구석 구경하다 해남 고구마도 한 상자 구입하여 땅끝 문학관 수필 반 박인하 시인의 수강생들과 저녁을 위해 수강생이 운영하는 김치공장 비닐하우스로 이동한다. 해남은 삼치가 유명하다. 김연아 수강생의 삼치와 하나 되어 회 뜨는 모습의 진지함은 마치 횟집 장인의 포즈다.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그러나 그 누군가 되어 솔선수범하는 연아 수강생의 마음이 아름답다. 자신을 버려야 도착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면 우리를 위해 기꺼이 눈감아주겠다는 삼치의 광경을 양지원 피디의 카메라는 삼치의 오래 기억될 자세를 배우겠다는 듯 촬영하고 있다.
해남 특산물 배추로 전을 지지고, 화덕에서는 고구마가 구워지고, 시장 표 통닭과 매생이 떡국에 삼치회와 굴전이 차려진 한상에 둘러앉아 뜨거운 이야기가 익어가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다시없을 소중한 시간을 수강생들 돌아가면서 인터뷰 한 마디씩 편집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