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의 녹우당

-백련재•4

by 김민재

이곳의 휴일은 월요일이다. 작가들 방 문고리도 흔들림이 없다. 외출 중이거나 밤새 글쓰기 작업을 하고 늦잠 혹은 휴식 시간일 것이다. 나는 마루에서 정원의 소나무와 고양이의 아련한 눈빛과 마주하며 차 마시기를 좋아한다. 적막강산 이 고요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바람조차 움직임 없다. 따뜻하게 무릎을 덮어주는 햇볕 이불에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나를 찌른다. 빨래 줄의 하얀 이불홑청은 일광욕이라도 하지. 이야기한 줄 만들지 못하고 쓰잘머리 없는 생각들만 팔랑거려 검정비닐봉지 펄럭거리며 녹우당 은행알 주우러 나간다.


월요일의 휴관일은 땅끝순례문학관과 윤선도박물관이 깊은 잠에 든다. 녹우당은 깊은 산사 같다. 이 적요를 깨는 나는 무법의 침입자다. 백련재에서 ‘땅끝 순례문학관’ 뒷길 조금만 내려오면 ‘고산 오우가 정원’ 그 길 가로지르면 수령 깊은 은행나무가 사시사철 옷 바꿔 입으며 녹우당을 지키고 있다.


20251108_112712.jpg 오우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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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7_175100.jpg 오우가 정원의 밤

녹우당을 윤선도의 생가라고 짐작하였는데 아니란다. 고산은 지금의 서울 종로 연지동에서 윤유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큰 아버지인 윤유기에 입양되어 종가의 대를 잇는다. 고산은 서울에서 살다가 25세가 되어서야 녹우당을 들렀으며 종택인 녹우당에서는 6년 정도만 머물렀다고 ‘고산박물관’ 해설사의 설명이다.


계절이 쓸고 간 은행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덕음산과 녹우당을 지키고 수북하게 쌓인 은행알맹이 구린 향기로 유혹한다. 시어를 줍는 게 나의 일이지만 은행알맹이 줍는 것 또한 시를 발견하는 일일 테니 괜찮다고 내 어깨 토닥거리며 월요일의 고요를 줍고, 풍요의 은행 알을 줍고,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오전을 줍다 일어선다.


관람객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 비자나무 숲길 가려다 얻어진 기회는 이렇게 예고 없이 오기도 한다는 걸 대문 열린 녹우당이 말하고 있다. 오우가 정원 정자 위에서 담장너머로 깨금발 딛고 녹우당 사랑채 올려다본 시간들. 열리지 않는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은행나무만 바라봤던 날들. 4대 조부인 윤효정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며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안으로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들어선다. 빗장 열린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마음 급해 사진도 삐뚤삐뚤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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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6_095813.jpg 덕음산
20251108_111649.jpg 11월 초의 은행나무
20251202_133338.jpg 11월 말의 은행나무
20251215_152549.jpg 12월 초의 녹우당
20260102_101233.jpg 12월 말의 녹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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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 보호수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에 심어 악귀를 물리치는 염원을 했다고 하여 학자수로 불리는 400년 된 회화나무 지나면 사랑채가 있고 서남쪽 담 모퉁이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그 옆으로 초가 한 채 창고로 쓰였나 보다. 며칠 후 초가지붕 새 옷으로 갈아입는 ‘이엉’ 올리고 있었다. 사랑채 왼쪽으로 행랑채가 있고 돌담과 돌담 사이 밖에 은행나무와 사적지 표지석이 있는 대문은 굳게 빗장 걸려있다. 말도 마부도 없는 지금 열리지 않을 빗장을 바라보다 내가 나를 가두고 빗장 열지 못한 채 살아온 나와 같아 알 수 없는 슬픔이 왔다. 아마도 이 대문으로는 말들이 드나들었던 것은 아닐까 옆에 마구간 비슷한 헛청이 있어서다.


사랑채는 효종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경기도 수원에 있던 집 사랑채를 현종 9년에 인천에서 배로 옮겨와 이곳에서 재조립한 것이다. 표면적 입장으로는 그냥 짓는 것보다 10배의 가격차이가 있지만 임금이 하사했다는 대단함과 권력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고산박물관 해설사의 설명이다. 사랑채 마루에 방명록이 있다. 오전에 누군가 다녀갔고 다녀간 이름을 남긴 방명록에 나도 흔적을 남겨볼까.


사랑채 뒤 동쪽 대문을 들어서면 절구통 보이고 그 앞 디귿자형의 안채가 있다. 푸름 가득한 넝쿨식물이 낮은 굴뚝을 감싸고 있는데 사랑채와 연결된 안채 정원은 미음자가 된다. 안채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하늘이 사각형이다. 안채지나 뒤뜰로 나가면 잡풀 가득한 우물과 주변으로 절구통과 곡식을 가는 확독(돌확)이 그 시대를 말하고 있다. 어린 날의 나를 소환하는 시간. 고창집 앞마당 우물가에 놓인 확독에 고추 갈아 김치 담고, 보리쌀 갈아 밥 짓던 친정엄마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쉽게 열리지 않던 대문이 열린 월요일의 녹우당은 이야기한 줄 만들어 주고, 늘 궁금했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시선너머 시선은 볼 수 없지만 풍경너머 건축물을 보여준 녹우당 뒷문을 나온다.


20251215_144113.jpg 녹우당 입구
20251215_144155.jpg 400년 된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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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_144326.jpg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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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3_134934.jpg 표지석 밖의 문
20251220_112438.jpg 표지석
20251215_145504.jpg 표지석 안의 빗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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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_145514.jpg 녹우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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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_145400.jpg 안채 정원
20251215_144807.jpg 안채 정원 굴뚝
20251215_144830.jpg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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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_144908.jpg 안채 뒤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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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_145244.jpg 잡풀 무성한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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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_145100.jpg 녹우당 뒷문
20251218_132926.jpg 초가 이엉 올리는 날


비자림 숲길 오른다. 이토록 적요의 길이 또 있을까. 마른 잎 바삭거리며 내 발자국만 찍히는 소리에 자꾸 뒤돌아보게 하는 산길을 두려움 어깨에 두르고 오른 끝에 비자나무 몇 그루 비자나무숲이다. 비자나무가 있는 숲이라고 하여야 할 듯하다. 비자나무는 해남윤 씨의 중시조인 효정이 500년 전에 심은 것이 자랐으며 천연기념물 241호로 지정되었다.


숲길 내려와 바람만 놀다가는 연동마을 ‘하얀 연꽃이 피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백련동’인 백련지에 연꽃은 지고 소나무와 정자가 휴일의 고요를 닫고 있다. 고산유적지 주차장 앞 연못으로 저물어가는 겨울 하루해 짧다. ‘어부사시사’ 시비를 지나 문학관 뒷길 백련재 텃밭에서 무하나 뽑아 무청으로 된장국 끓이는 나의 저녁은 내가 나를 기다려주듯 시어들이 들어오는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51218_125747.jpg 비자림 가는 길 종가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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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8_130836.jpg 비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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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2_074608.jpg 백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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