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오랑가바드행 특급열차
‘오늘 안 되면 내일 되겠지, 아마 그럴 거야…….’ 그런 느긋함이 인도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거라던 말이 절실히 와 닿은 날, 그런 날이 바로 오늘이다. 아무리 구체적이고 훌륭한 계획을 짜 짊어지고 갔더라도 그대로 실행되지 않는 곳. 계획과 현실의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는 ‘생생한 삶의 현장’ 그대로인 곳 인도. 신나는 질주를 꿈꿔왔던 도시인에게 지독한 교통체증 속 그런 깨달음과 느긋함을 안겨준다.
여왕의 목걸이(마린 비치 해안)의 아름다움에 취해있던 부처님 성지순례단 팀 우린, 잠시 뒤 뭄바이 발 오랑가바드 행 오후 2시 특급열차가 던져 줄 찰나의 기적(?)을 미처 몰랐다. 점심 한 끼를 위해 들어선 중국식 식당 ‘금릉 주가’는 황홀한 탐식과 우아함까지 덤으로 얹어주는 곳이다. 기다림 끝에 닭고기 야채수프가 올려지고, 요리사의 사랑 양념 가득 베인 돼지고기 볶음에, 맑은 기름에서 막 건져 올려 금방이라도 튕겨나갈 것 같은 바삭바삭한 튀김, 그리고 아침 야채시장의 신선한 채소들까지 섞여 닭고기와 한 몸이 된 볶음요리 등이 차례차례 줄을 이어 향과 맛을 뽐낸다.
아름다운 음식에 흠뻑 취해 맛보고 즐기고 누리던 우린 그때까지 몰랐다. 어디 인생이라는 게 생각한 데로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던가? 그런 인생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런 여행은 참 밍밍하겠지. 어쨌거나, 우린 고행의 시간도 함께 먹고 있는 걸 알지 못한 채, 우아한 식사를 이어갔다. 고난의 마라톤이 잔뜩 벼르고 있었음에도.
‘그래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는 거야.’ 단체사진도 찍고 지나가는 인도 여인도 흐뭇하게 바라보며, 물건 파는 꼬맹이들하고 흘러갈 대화도 나눠보고, 차창 밖으로 손 흔드는 사람들에게 미소 한 보따리 푸짐하게 날려주면서 느긋하게 기차역으로 출발!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만나야 하는 여행의 소소한 안주거리는 만들어야 명쾌하게 취할 수 있는 알딸딸한 여행이라 말할 수 있으니까.
인도엔 참 사람이 많다. 국토의 크기가 남한의 34배이고 인구는 21배에 달한다는 이 나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으면서 사는 자유로운 민족이다. 그런 자유로움과 그들의 여유로움이 오늘 마음 바쁜 여행자들의 발목을 잡아챘다. 어쩌면 한국에서처럼 시간 계산을 너무 정확하게 한 인도 무식자(?)들의 실수였을 것이다.
인도의 문화, 국가의 지리적 한계를 말할 수는 있지만 그 문화적 실체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인도의 문화는 '이것이다.'가 아니라 '이것은 아니다.'라고 정의하는 것이 쉽다는 것. 사실상 인도와 인도인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도, 대체적인 윤곽을 파악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겨우 15일 간 뜨내기 여행자들의 눈으로 인도 문화를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지. '정말, 엄청나게 그리고 예측 불가능하게 다르다.'는 인도를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기차 출발시간은 다가오는데 도로는 차로와 사람이 뒤엉켜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그 아우성 속에서도 도로변 음식 리어카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말릴 수는 없다. 아무리 차가 빵빵거리고 택시가 드 밀어도 그들은 그저 웃으면서 손 흔들며 먹는 걸 행복하게 즐길 뿐이다. 다다르(Dadar) 역은 손에 닿을 듯 눈앞에 있는데 버스는 더 이상 나갈 수 없다는 현실. 순간의 선택이 우리 여행 일정을 죄 흔들어 버릴 수도 있다. 기차를 타기 위한 우리들의 사투는 마치 가르마에 빨간 꿈 꿈 가루 핏빛 선명한 줄을 그은 결혼한 인도 여자의 인생처럼, 여정의 한 페이지 획을 그어줄 열차를 필사적으로 잡는 것이다.
버스 문이 열리고, 여행 가방의 무게를 온몸으로 부대끼며 인도식 007 첩보작전? 한국식 007 첩보작전? 어느 것도 구분 안 되는 스릴의 캐리어와 사투가 시작됐다. 꽉 막힌 도로에 무단횡단은 기본사항. 밀려오는 인파 속 질서는 완전 무시, 서로 밀치며 살아남겠다고 내달리는 것은 옵션. 막강한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그렇게 우리들은 농담처럼 '인도 사람 다 되었네!'라는 헛웃음을 털어냈다. 인도에 왔으니 인도에 따르라, 그것이 진리이다. 뭐 그런 이야기가 된다.
중간에 만난 몇몇의 포터가 역전으로 가는 계단 층층 우리의 캐리어를 머리에 이고 달렸고, 캐리어를 맡기지 못한 일행은 천근 같은 무게를 이고 다다르 꽃시장 골목을 후비며 마라톤까지 해야 했다. 꽃향기가 매연과 엉켜 알 수 없는 바람을 일으키고. 난 달리면서 꽃들에게 카메라 셔터를 날렸다. 마치 성화 봉송처럼 꽃시장 골목을 누빈 이 상황에서 ‘환희가 금지됨’ 시 제목이 카메라 속으로 퍼뜩 들어오는 것은 또 무슨 조화일까? 축 처진 줄기를 곧추세우려다 그만 바구니 안에서 목 떨어진 꽃들이 자라고 색색의 나일론 줄에 엮어져 일어서지 못한 채, 이글거리는 태양빛을 다 받아내며 금잔화 꽃목걸이는 길목을 붙잡고 있다. 꽃 그림자를 관통하며 빛의 속도로 달리는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
내 짐을 든 포터를 찾지도 못한 채, 미처 포터에게 선택받지 못한 누군가의 캐리어를 든 난 역전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땀만 삐질 댔다. 출발 삼분 전, 아직도 내 것과 몇몇 개의 캐리어가 오리무중이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는 인도에서 우리는 무모하리만치 순진했던 걸까. 과연 주인 잃은 캐리어는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캐리어와 우리, 포터까지 올라서니 기차가 출발한다. 그때 우리는 카메라 셔터스피드의 속도로 찰나의 기적(?)을 이뤘다. 가방의 무게와 시간 속 짓눌림에서 겨우 살아남은 우리.
어떻게 될지 모를 사라졌던 캐리어도 나타났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기차도 무사히 탔다. 첩보작전을 성공리에 끝낸 우리들은 특급열차에 앉아 땀을 식히며 한숨 돌리고 있었다. 그때, 인도 가이드 '람지'와 포터 간의 큰 소리가 오간다. 너무 비싸다고 가이드는 깎고 포터는 더 달라고 하고, 우리의 특급열차 칸이 지나온 꽃시장만큼 술렁이고 야단스럽다. 이 소란 속에서 문득 난 안도현 시인의 시가 떠올라 웃음이 난다.
산서에서 오수까지 군내(郡內)버스비는 400원 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 원짜리 동전 세 개 하고 십 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 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 붓기 시작 합니다 무슨 큰 일 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 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치고 오수에 도착 할 때 까지 훈계하고, 응수하고 훈계하고,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열심히 산다는 것」전문
결국 금강여행사 사장님이 해결사로 나서고 포터는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린다. 아찔한 순간이 덜컹거리는 레일로 사라지면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 우리가 탄 소위 특급열차 열차 내부는 경악스러움 그 자체였다. 태고 적부터 단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은 듯한 먼지가 먼지 옷 입은 선풍기 주변을 빙빙 돌며 춤을 춘다.
먼지들의 필사적인 춤이 처절하고 슬퍼 보여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몸 구석구석 침투하는 화장실 냄새는 짜이(인도 홍차)로 다스려보려 했지만 그야말로 안간힘일 뿐이다.
말이 특급 열 차지 땟물에 찌른 좌석은 더러움과 깨끗함을 차별하는 마음도 버리지 못하면서 인도 여행은 왜 하나 하는 물음을 던지는 것 같다.
먼지 비가 주룩주룩 유리창을 덮었다. 창밖을 다 가릴 정도로 흐리고 탁하다. 그래 이것이 인도다. 그래서 '인도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방법'보다는 '인도를 바로 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둠에 빠진 오랑가바드 역사에서 오늘 하루 누렸던 여유로움 뒤에 오는 처절한 시간과의 사투를 떠올려 본다. 이 또한 여행의 달콤쌉싸레한 묘미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