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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Apr 15. 2019

7. 바람이 머문 자리에 서서

-- 그 여자 이태리, 시간을 걷다

트리톤*의 꿈


 진실이 사라지는 순간을 만난 적이 있다 꿈이었으면 하는 표정으로 몇 날을 날려 보냈다 진실을 심판한다는 조각상 보카 베리타의 표정 없는 여기 내가 있다     


오랜 시간 우리의 생각들은 고체에서 액체로 흘러서 서로에게 스몄다 마음날씨는 늘 맑음이라 믿었고 더욱 단단해 질 거라는 거짓은 책갈피에 찍힌 구두점이라 믿었다  


어느 날 너는 진실의 입에 얼음물 끼얹어 흠뻑 젖은 나를 건드릴 수가 없었다 속이 끓고 혈이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불가능에서 가능을 쓸 수 있을지 시발역보다 종착역에 도달하기 더 어려운 진실의 철로에서 믿음은 탈선을 했다      

이십 년 전 오늘의 일기를 들추어 본다 매우 맑음 이십 년 후 오늘 눈이 내린다 거짓들이 쌓여 상처를 이룬다 지우지 않아도 내 말들은 사라진다 너의 말들은 활자화 되어 거리에 날아다닌다  

    

진실의 넝쿨 뻗어 10년 후 가능의 세계로 가는 길 트리톤에 내 손 넣고 묻는다 진실과 거짓의 손가락은 이상의 넝쿨이아니라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로마 

 세계를 선도한 고대 문명과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이자 고향. 르네상스의 시작을 연 로마는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했을까? 고딕 시대에는 종교 중심이었다면 르네상스 시대는 자연중심이라 한다. 자연 자체라기보다는 자연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조화로운 비례와 상태를 추구한 자연주의. 종교와 예술이 분리되어 건축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매력적인 도시. 며칠을 두고 봐도 다 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데 겨우 반나절 그 짧은 시간에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아쉬움이 큰 도시 로마.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쳐 로마에서 시작된 길은 제국의 전역으로 뻗어 문명이 오고 갔고, 여기서 시작된 로마문명은 천년 이상 지속된 곳, 그리스와 터키를 기반으로 한 동쪽의 로마문명이 2천 년 동안이나 이어졌으니, 조그만 도시국가 로마가 어떻게 세계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또한 로마가 무너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역사가들의 질문은 도덕성의 빈곤이 로마의 종말을 가져왔다고 하지만 천년이 지난 지금도 다가올 천년 후에도 지지 않은 로마문명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팔라티노 언덕에서 포로 로마노에 잠시 정신줄 놓고 있다.


 고대 유적을 간직한 로마는 르네상스의 중심이 될 자양분이 풍부한 도시다. 켜켜이 쌓여 있는 시간의 흔적의 도시이자 전체가 박물관인, 그냥 바람의 방향 따라 걷다가 바람이 머무는 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여행자? '관광객은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모르고, 여행자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여행자의 책』에서 ‘폴 서루’의 말처럼 관광객이든 여행자이든 우리 문명 속에 속한 풍경의 일부가 되던 나는 10간 12지를 돌고 돌아 새로운 삶으로 부활하고자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인 여기에 있다. 앞으로 남의 내 생의 새로운 시작점에서 로마를 르네상스로 이끈 것처럼 내 삶 또한 재생을 바라는 그런 맘 줄기 하나 뻗어내고 싶은 그런 것.           



 판테온 신전 앞 

 로마 장군 아그리파가 만든 원형 그대로 간직한 로마시대의 건축물. 로마 건축의 미학 판테온. 모든 신이라는 신전에는 건국 영웅 빅토리오 임마누엘 레 2세와 움베르토 1세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건물이라 칭찬한 천제 화가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지. 인간적인 어떤 것이 기록될 그 어떤 것을 찾아 나선 여행길. 꽉 잠긴 목 상태가 좋지 않아 그 풍경도 기록되지 않는 나는 신전 앞 길거리 예술가의 바이올린 연주조차 큰 울림을 주지 않는다. 


 검은 말의 눈동자 축 늘어진 마차가 여행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되는 한 귀퉁이. 로마에서 유명하다는 ‘타짜 도르’ 카페 구름이 흘러가듯 사람들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 바라보며, 웅장하게 받치고 있는 코린트식 화강암 16개의 원기둥을 옆구리에 끼고 앉아 젤라토에 입 맞추고 있다. 신전 천정 빛의 경로 오쿨루스 뚫린 구멍은 감상하지 못한 채, 바로크 양식의 트래비 분수로 간다.     


 

트레비 분수

 베네치아는 자연 발생적인 물의 도시, 로마는 물을 인공적으로 잘 활용한 물의 도시라 한다. 

 세 갈래 길(Trevia)이 합류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목마른 로마 병정들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나 물이 있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한 데서 유래한,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고대의 수도 ‘처녀의 샘’을 부활시키기 위해 만든 것. 


 분수의 중앙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아래에는 그의 아들인 트리톤이 있다. 분수 왼쪽의 날뛰는 말은 풍랑을, 오른쪽의 말은 고요한 물을 뜻 한다.  로마인들이 바다의 신을 통해 테베레 강의 범람 피해를 막고자 했던 바람이 담겨있다. 


 관광객들 동전 던지기에 눈과 손이 바쁘다. 각자 이곳까지 무겁게 들고 온 소원들 분수에 투하한다. 로마에 다시 오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게 뒤로 던지는 동전만큼 마음도 가볍다. 기부하는 기쁨이 있으니까. 이 동전은 수거하여 교황청 산하 ‘카리타스’에서 에이즈 환자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데 나에게는 기부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그저 바라볼 뿐. 오드리 헵번이 그랬듯이 소원을 비는 마음은 기쁘고 행복이다. 트래비 분수의 조각 원안은 잔 로렌초 베르니니, 그는 ‘예술작품의 가치는 자연의 실제 모습의 묘사가 아니라 이상적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데 있다’며 바로크 양식의 예술적 가치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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