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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May 20. 2019

아파서 슬프고, 슬퍼서 아프다

--1. 목포, 1박 2일

오래 전 꽃 피고지고 연두에 물들다 초록 지천일 때까지 병실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아픈 딸보다 남아 있을 손자들만 생각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꽃 피고 지는데 연두 물들고 있는데 몸과 마음이 아파 병실에서 자신과 싸우고 있다는 친구의 소식이 전해져 왔다. 너무 아파서 슬프고, 슬퍼서 아프다. 그 시절의 내가 되어 돌아온 것 같다. 견디고 견딘 무게가 어떤 건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친구의 아픔에 슬픔이 내 방까지 찾아왔다.      


마음 펼쳐내지 못해 읽을 수 없는 우울을 버리고 목포행 ktx를 탔다. 진한 안개로 한치 앞이 안 보인다. 안개를 끌어안고 달리는 열차를 따라 마음의 안개 또한 걷히지 않았다. 싸우고 있을 친구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는 사이 안개 걷히자 오전이 지나갔다.   

    

안개 같은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무작정 떠돌았다. 푸른 바다를 마주하고 세상 평온하게 펼쳐진 목포 문학관에서 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김현, 선생들 생애와 작품을 감상한 후 목포생활도자기관 가는 길. 남농기념관은 휴관이었다. 터벅터벅 보도블록 사이 보라보라 제비꽃에 쪼그리고 앉아 아물지 않은 생각 하나 붙잡고 그렇게 있어도 그림자조차 없다. 

    

떠돌아도 마음 속 안개는 비워지지 않았다. 숙소에 와서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친구의 안부를 끌어안고 뜬눈으로 밤을 샜다. 슬픔이란 어디에서 솟는 것일까? 그 슬픔은 어떻게 삭힐 수 있을까?   

   

어제 다하지 못했던 골목투어를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어쩌면 어제 다하지 못한 게 투어가 아니라 내 안에 아직도 차 있는 걸 비우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구부러진 길을 따라 걷는 내 마음만은 곧게 펴며 어슬렁거린다. 그러다 보면 막 떠오르는 태양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글귀들 우정은 깡통과 같은 거래 찌그러질 순 있어도 깨질 순 없는 거래 친구야 사랑해와 어우러진 깔끄막 텃밭. 푸른 마늘잎 손짓하고 푸성귀들과 강아지들 골목을 지키는, 아직 손닿지 않은 아침을 만질 수 있었다. 그렇게 달성공원 벚꽃 휘늘어진 계단 총총 내려오면 ‘목원 감성 벽화 안내도’가 묻는다. ‘언제 행복할 예정이신가요.’ ‘여기서 지금’     


조선인마을, 일본인마을, 유달산, 항구, 서울로 가는 다섯 갈래 길. 오거리 초입 ‘동본원사’는 일본식 불교사원으로 현재는 오거리 문화센터로 활용하고 있지만 암울했던 시대에 민주화운동의 산실로 활용했던 역사적인 건물이다. 일본은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신성한 곳, 화살을 쏘아서 신성한 곳, 화살이 떨어지는 곳에 절을 짓는다고 한다. 그래서 절 입구가 활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이곳은 일제 때 사무라이가 돈을 바친 곳,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목포의 특징은 굴뚝이 없다. 목포는 부산, 군산, 인천에 이어 4번째로 1897년 개항한 항구다. 일제는 개항과 동시 통해 수많은 것들을 쌔비해(훔치다) 갔다는 해설사의 설명. 돈이 없어 가난한 목포. 그래서 굴뚝이 없는 목포. 일제 수탈의 한 단면이다.     

 

근대역사관 1관은 목포 일제 영사관이었다. 르네상스식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내부로 들어서 2층으로 오르면 일본인이 사용했을 물품들과 목화의 솜과 씨앗을 분리하는 기계 면화수탈의 조면기가 있다. 목포는 1흑(김) 3백(쌀·소금·면화)으로 유명한데 그때 사용했던 조면기 벽난로 재봉틀 냉장고 인력거 등 전시 되어 있었다.     

 

토지 경영 부동산 담보대부 등 사업으로 한국의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한 ‘동양척식주식회사’ 일제의 한국농민 수탈의 선봉이 된 곳. 근세 서양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일제 침략의 실증적 유적이다. 일제의 흔적을 간직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몇 겹의 철문 두둑한 금고가 있었다. 조선인의 피와 땀과 재산을 빨대로 쏘옥 빨아버린 ‘동양척식주식회사’였던 역사관을 뒤로 하면서 나도 내 자신을 시간 속으로 묻어둘 수 있을까 자신에게 물어 본다.     


땅이 비좁아 바다를 매립하여 이룬 도시 목포. 사방이 물인 동시 물이 귀한 곳 목포. 한때 한 정치인과 관련하여 논란이 일었던 근대역사거리가 관광객이 급증하였다고 한다. ‘갑자옥 모자 점’ 지나 ‘창성장’ 붉은 건물 뒤로하고 서산동 시화골목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고무줄 하나면 신났지’ 흑백사진 속 시화골목 계단을 올랐다. 벽화와 시, 그 안 삶의 애환이 담긴 주민들의 꿈으로 새긴 언어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꺼내고 꺼내어도 새롭게 또 다른 삶의 애환이 나올 것 같은 보리마당 사람들. 비탈진 길 내려오다 잠깐 고개 들어 바라보는 목포 앞 바다는 파랑이 파랑을 새기고 있었다.      

목포 앞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보리마당 길 주민들의 글, 작가들 작품과 악수하면서 걷는 길 또한 혼자다. 돌담 의지하고 동백꽃 휘늘어지게 핀 계단에 앉아 바람이 지나는 쪽으로 기울어 보는 생각들. 이 고요 속에서 한 사람이 지나간 다음 세계까지 풍경이 색채를 이룰 수 있는 곳이리라. 연희네 슈퍼 앞 영화 속 연두색 추억의 택시를 거기에 두고 시간 여행의 종착지 목포역으로 갔다.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시작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안고 기차에 올랐다. 행복은 누구의 것도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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