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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Jun 15. 2019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이 돌아오는

--언양, 그 하루

보는 것들이 보는 곳으로 돌아오고 말하는 것들이 말하는 곳으로 돌아오는 새벽녘. 철로의 한 끝에 서서 인간은 채워질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모든 사람은 혼자다』을 배낭에 구겨 넣고 울산행 기차를 탄다.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유적 보러 가는 길. 어제 내린 비로 촉촉한 나뭇잎 사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보라색 표지판이 길을 안내한다.       

 대곡천 따라 자박자박 걷다 보면 암벽에 새겨진 ‘울주 대곡리 연로 개수기’ 아크릴 투명판 뒤 많이 훼손되어 판독하기 어려운 글자들이 숨 쉬고 있다. 황토 길 따라 곧게 뻗은 댓잎 바람에 바스락바스락 구부러진 생각들 펴게 하고, 엉겅퀴 보라색 몸 흔들어 하얀 찔레꽃 눈빛 내 마음에 가만히 올려놓는다. 가끔씩 만나는 방문객 혹은 일가족과 눈인사하다 보면 뼈대 앙상한 벽락 맞은 검붉은 나무 푸르름과 대비되어 온다.      

 

 


 청동기시대부터 신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에 기록되었고 태화강 상류에 위치한 거북이 넙죽 엎드린 형상이므로 반구대(盤龜臺)라 한다. 태화강 지류의 대곡천변의 깎아지른 절벽에 너비 약 8m, 높이 약 3m가량의 판판한 수직 암면에 새겨져 있는 암각화는 대한민국의 국보 제147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를 표현한 암각화로 평가되고 있는 여기 연고산 한 자락이 뻗어 내려와 기암괴석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암각화     



바다와 육지가 한 몸이 되는

암반 속으로 사라진

고래의 흔적을 찾습니다

풍랑에 휩싸인 암각화 속에는

고래 울음이 숨어 있습니다

물속에 잠긴 고래는

암벽 수장고에 저장된 몸을 풀고 있습니다

동물의 숨소리로 주위가 파랗게 물드는

물안개 혼들 불러들이는

고래의 무덤이 있습니다

                        시집 식빵의 상처에서     


 비 온 뒤의 청량감과 주변의 한적함 사이로 삐쭉삐쭉 솟아난 잡풀 너머 암각화는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볼 수 없고, 세 개의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지만 망원경으로 봐도 잘 모르겠다. 시력이  좋지 않은 나는 마음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카메라 렌즈를 끝까지 당겨본다. 선명하지는 않고 구분되지 않는 암각화 새겨져 있는 듯하다. 무성하게 자란 대곡천 주변 잡풀들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 따라 잡념들 흘러 보내고 영남알프스 간다.

    

 가지산 한 자락 차지하고 있는 비구니의 수행 도량 언양 ‘석남사’ 왔다. 돌담 휘돌아가는 여승의 장삼자락 한끝 부여잡고 머물고 싶은 고요가 왔다. 적멸궁에 매달린 물고기 바람에 투명한 파동을 일으키는 대웅전 앞. 삼층 석가 사리탑은 신라 현덕왕 16년에 도의 국사가 호국의 염원을 빌기 위하여 세운 15층의 대탑. 임진왜란 때 손실된 것을 1973년에 삼층탑으로 복원하고 스리랑카 사타티싸 스님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다가 석남사 삼층 석가탑 안에 봉안한 것이라 한다.      


 삼층 석가 사리탑 기도하는 신도의 구부러진 등 너머 순백의 불두화 석남사가 환하다. 비 온 뒤 솟아나는 잡초처럼 자꾸 고개를 내미는 상념들 번식에 번식을 거듭하는데, 삼층 석가탑 안에 집어넣고 나는 얼마나 더 많은 불공을 올려야 마음에 쳐놓은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청운교에서 바라보는 계곡 삼단 폭포 물소리 모든 근심 걱정 끄집어내어 여기에 헹구어 흘러 보내고 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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