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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Sep 01. 2019

3. 천년의 바람, 폐허의 아니(Ain)

-터키 아나톨리아 그 17일

천 년을 묵었다. 

천 년의 혀는 폐허가 되었다. 

그러므로 무너진 성벽이 말하는 일은 성벽을 세우는 일보다 이 성벽의 안팎을 헤엄치는 물고기. 

나는 오늘 바람 따라 폐허의 바다를 유영하는 물고기다. 

비린 지느러미가 아닌 내 그림자와 발자국 스르륵스르륵.     


 역사, 문화, 종교 등 흥밋거리가 풍부한 매혹적 곳 아니(Ain).  터키와 아르메니아 간의 분쟁이 이곳의 유적을 위협했던 적 있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유적지를 감상할 수 있다.


 

 중세 아르메니아 바그라트 왕국의 성 정문 아슬란(사자) 안으로 들어서니 왕궁은 간곳없고 돌무더기들 야생화와 어우러져 뭉쳤던 시간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한때 1001개의 성당을 지녔다는 도시. 실크로드의 중심이었던 건물의 아름다움은 시간과 변화의 물결 속에 사라지고 ‘바가 라트 아르카 운’ 성당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이룬 아쿠리안 강물만이 카스피 해로 가기를 기다릴 뿐. 돌무더기의 기단만 남아 있는 하암(목욕탕) 터는 캄캄하다. 협곡과 협곡 사이 철조망 닿을 듯 닿지 못하는 터키와 아르메니아 서로 눈 맞추고 나는 너무 깊이 바라보다 안구를 베이고 터키 빵 같은 단어로 뜨거운 오늘의 날씨를 쓴다.     


국경(오른쪽 터키, 왼쪽 아르메니아)

 


 지진에 무너지고 뭉개지고 양쪽 철근 바치고 굳건히 서있는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주교좌인 카테드랄 성당. 슴바트 2세가 짓기 시작하여 그가 사망 후 부인 카트라니데 여왕이 완공시킨  이 성당은 셀주크의 술탄 알프 아슬란에 의해 이슬람 사원으로 활용되었다는 원추형 돔. 지진으로 무너진 자리 맑은 하늘 우물이 패였다. 고개 들고 마음의 두레박 던져 구름 물 퍼 올리며 프레스코 화 눈인사 후, 그 길 따라 쭈욱 셀주크 투르크가 아나톨리아에 처음으로 지어진 팔각형 미나렛 악수를 청한다. 아치형 창가 7월에 걸터앉아 터키와 아르메니아를 잇는 이텍 욜루다리 무너진 사이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 아쿠리안 강 바라보고 있으려니 잡풀 가득한 유적지 보라 엉겅퀴 가시 콕콕 찌른다.       


 무너진 성채에 올라 바라보는 드넓은 유적지 가슴 뛰게 한다. 멀리 벼락 맞은 성당 아슬아슬 철근에 기대어 있고, 손 닿을 듯 국경 너머 아르메니아 초원 위로 흐르는 흰 구름과 바람소리  하루 왼 종일 여기에 앉아 고즈넉이 바라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Ani)  



아쿠리안* 강물이 흘러 아라스 강과 몸 섞는 국경 

바그라트 왕국의 흥성했던 시절 소문만 무성하다

여기 어디쯤 슴바트* 왕궁이 있고     

한때 번영했던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있고

실크로드의 상인들의 저자가 있었을 텐데

왕국의 수도 돌무더기로 남은

무너진 성벽 따라 기약 없이 떠났을 왕들의 

희망을 접은 폐허

한 무리의 소떼들 몽골침략을 지우듯 

향기피우는 아쿠리안 강가

협곡에 걸터앉은 동정녀 수도원 

물길 따라    

융성했던 시절의 꿈을 접은

잃어버린 말과 잊지 못할 이름들

카스피 해까지 흘러갔을 수척한 시간들 

쿠르드에서 조지아까지 어둠 깊은 말들

엉겅퀴 꽃 가시 삐죽삐죽 

지진에 상처 입은 성벽 꽃으로 수놓고 있는 여기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우울 한 움큼 슬쩍 밀어 넣는다

     

*터키와 아르메니아 국경을 이루는 강

*아르메니아 왕          



성 그레고리오스 성당 지나 원형의 기둥과 조각된 받침대 나뒹굴고 있는 가기크 교회 한 귀둥이 서서 비잔틴, 셀주크 튀르크, 조지아, 몽골 침입에 지진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 눈물이 태어났다 어둠에 미끄러지는 아니의 역사를 본다. 


 이 돌무더기 어디쯤 슴바트 왕궁이 있고 실크로드의 카라반들 저자가 있었을 텐데 왕국의 수도 돌무더기에 갇힌 채 말이 없다. 드넓은 벌판에 듬성듬성 솟은 교회건물의 아름다움은 시간과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세시대가 이룩해 낸 창조적인 건축물 오래도록 기억에 담는다.   

  

  

  

 이란의 국경도시 도우바야즈트 가는 길 붉은 황토 언덕과 아르스 강물 줄기 따라 오아시스처럼 펼쳐진 평온. 그리고 야생화 너브러진 2000m의 고원지대를 달린다. 가끔씩 만나는 소떼들 도로변을 막는다. 여행객과 어우러지고 싶은지 아니면 길을 안내하고 싶은 걸까     

 

 남동쪽으로 내려올수록 땅의 색이나 기후가 사막의 느낌을 준다. 붉은색, 갈색, 노란색. 녹지가 줄어들면서 사방에 모래바람이 휘날린다. 메마른 땅 메마른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그렇게 지나온 것처럼 건조한 관계와 거리를 만든 것처럼 풀조차 자라지 않은 길을 간다. 가끔 만나는 어린 나무 무리 지어 가다 다시 또 메마름의 끝에서 만난 해발 700m 이드의 시골마을 도로변 살구 상자 줄지어 호객하고 있다. 

  살구의 도시 말라티아는 우리의 일정에 없지만 살구와 말라티아를 끌어올리며 터키 가이드가 선물한 살구 씻지도 않고 버스 안에서 먹는 맛은 어릴 때 앞마당 살구나무 가지 꺾어가며 따먹던 그 달디 단 달콤함이 입 안 가득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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