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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Sep 07. 2019

4. 노아의 방주, 핑크 우산 쓰다

---아나톨리아 그 17일


  노을이 물들어가는 ‘동쪽의 흰 마을’ 쿠르드족이 많이 살고 있는 도우 베야 짓 시장 골목 걷는다. 여기저기 상점 기웃거리는 재미가 여행의 묘미 아닐까. 은색 장식물도 주머니에 넣어보고 알록달록 스카프도 목에 두르고 반 건조 무화과도 한 봉지 사 들고 출렁출렁 거리를 걷는다. 어린 아들과 함께 나온 노점상인 수레의 싱싱한 살구가 별빛에 적셔지고 있다. 터키 가이드가 사준 살구 맛 잊지 못해 검은 봉지 가득 담아보고 달콤한 유혹에 아작아작 씹으며 함께 사진도 찰칵. 시커먼 남자들만이 거리를 메우고 있는 멀리 만년설에 덮인 아라랏 산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여자라곤 이방인인 우리뿐. 그때 길 가던 차도르의 터키 아가씨 함께 사진 찍자 한다. 한적한 시골마을 이란과 터키를 오고 가는 상인들의 고장. 아라랏 산 중턱에 있는 누훈 게미시(노아의 방주)에 성지 순례 객 많다는(?) 이 곳의 밤 깊다.   

   

도우베야짓 바자르 거리
만년설의 아라랏 산


  호텔 밖 거리 싱싱한 체리, 포도, 수박 등 과일들이 아침을 열고 있다. 바야즈트 지역 오스만 총독이었던 졸락 아브디 파샤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삼면이 절벽인 이삭 파샤 궁전 간다. 그러나 오늘은 월요일 휴관일. 궁전 위 사드락사드락 걷다 보면 가파른 절벽 세월의 흔적만큼 이제는 뼈대만 남아 있는 고대 우라르트 시대에 세워졌던 무너진 요새와 오스만 제국 시대의 셀림 1세 사원과 만났지만 큼큼한 기분은 뭘까. 누군가를 만나러 왔다가 그냥 가는 길의 뒷면은 언제나 막막하다. 아닌 길은 미련 두지 않는 법.      


무너진 요세와 셀렘 1세 사원

  이란과의 국경 지대인 아라랏 산 맞은편 산 중턱의 노아의 방주로 간다. 대형차로는 갈 수 없어 작은 차로 갈아탄다. 델 셰게르 마을 입구 붉은 열매 알 수 없는 나무 반기는 길 따라 달리다 보면 구불구불 차창 밖 멀리 아라랏 산이 길을 안내한다. 아라랏산 정상으로부터 20㎞ 거리의 해발 2000m 산 중턱에 위치한 배 모양의 특이한 지형지물. 1950년대 이후 항공촬영에서 노아의 방주 모습으로 알려진 곳 누훈 게미시다. 뒤돌아서면 만년설 품은 아라랏 산, 다시 뒤돌아서면 눅눅하고 우중충한 누훈 게미시 서로 마주 보고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사진 찍다 성자 샘이 놓고 온 핑크빛 우산 노아의 방주 위에 펼쳐 놓으면 역사라는 이름의 또 다른 배를 타고 우산 접었다 펴다 하며 시간을 오르내리겠지.      

델 셰게르미을
누훈게미시(노아의 방주)

  터키 가이드의 수고로움 덕분에 휴관 중인 이삭 파샤 궁전 간다. 막막했던 뒷면이 기대에 찬  앞면으로 돌아서 오는 길 검문검색이다. 이란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리적 여건도 있지만 쿠르드족이 많이 살고 있는 도우 베야 짓은 역사적으로 터키 정부와 갈등을 겪고 있는데 분리 독립을 원하는 쿠르드족.


 쿠르드족 문제는 시리아에서 미군이 철수하면서 현재 가장 시급한 중동 문제의 핵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다. 복잡한 영토문제, 석유자원, 그리고 이슬람 종파인 시아파와 수니파 갈등 등 여러 사유로 인하여, "중동국가"들은 쉽게, 쿠르드족 독립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고, 쿠르드족은 자치 독립을 원하고 있는 상황.

  뒷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굳게 닫힌 궁전의 문이 열리기까지 숨죽이며 버스 안에서 기다려야 하는 그 짧은 시간 길게만 느껴진다. 시내에서 약 5km 떨어져 있는 산 중턱. 셀주크, 오스만, 페르시아 등의 건축 양식을 이용해 2층으로 지은 이삭 파샤 궁전. 입구에 들어서면 태양 작열하는 드넓은 마당과 셀주크 시대의 부조 무덤이 반긴다. 내부는 술탄의 공식행사나 집무를 위한 공간 셀람 럭을 비롯한 부엌, 감옥, 화장실, 하맘(사우나), 하렘, 대상들의 숙소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무너진 천장 부분은 유리로 보수하여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사원 마당

 시내로 들어와 점심 후 터키 국경인 이란과 반에 위치한 방패 화산 텐뒤렉(해발2,644m) 고개를 넘는다. 소낙비 후비고 간 뒤 드넓은 평원 분홍의 ‘구름송이 풀꽃’ 물결로 알 듯 모를 듯 제 몸 흔들어 대며 한낮의 햇볕을 먹고 있다. 그 틈새로 바람의 계단을 오르고 있는 보라의 ‘델피니움’ 꽃 한들한들 유혹의 손길 뿌리치지 못하고 도로변에서 잠시 포토타임. 엉덩이에 문신하는 꽃들의 시간이 바람났다. 꽃 풀밭에 매달려 어쩌지 못하는 마음들 바라보는 교수님의 조급함도 저러하였으리.   

   


 출렁다리 출렁거리는 마음 다스리며 벤디마히(무라디 예) 폭포 물줄기 속으로 스며든다. 터키의 유원지? 피서객과 관광객 뒤엉켜 물줄기는 더욱 세차게 쏟아지고 황새냉이 하양의 꽃 빛깔 폭포와 어우러져 너울너울 춤추는 데 썩은 나무와 함께 스르르 숙미 샘 한쪽 다리 드밀어 상처를 만든다. 여행은 육체와 정신을 단기간에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좋은 주치의라고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이렇듯 갑작스러운 상처를 만나면 여행 주치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벤디마히(무라디예)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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