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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Sep 23. 2019

6. 색을 뜯어내는 고요의 온도

---넴루트 산과 안티오코스 1세

  넴루트 산 중턱의 유프라트 호텔. 흐르는 시간 따라 변해가는 주변 풍광들. 하늘 가까이에서 낭만적인 저녁식사는 반찬이 풍경이다. 발아래 산등성이 뱀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으며 솟은 사이로 저녁 햇살이 산봉우리 옷을 벗기고 있다. 작은 미련이 남은 노을 산봉우리 떠나지 못하고 어슬렁거린다. 푸른 하늘에 하얀 반달 살며시 드밀면서 쏟아지는 별빛. 내게 달려오는  북두칠성 안에 알싸한 맥주 한 국자 씩 떠내는 넴루트.

 

  

  바람의 계단 절름발이로 걷는 불안전한 시간이 관절염 앓는 무릎처럼 삐걱거린다. 마늘빵처럼 질긴 하루가 시작되는, 그러나 지금은 어둠의 소리들이 흘러내리는 새벽. 죽어서도 신이 되고 싶었던 콤마게네 왕국의 안티오코스 1세의 무덤가는 사방이 어둠이다. 무척이나 뜨거웠던 그 삶과 죽음으로 죽음을 넘어서고자 했던 열망의 왕 안티오코스 1세.       


 셀 수 없는 어둠의 날을 지나왔지만 어둠이 어떻게 태어나고 죽는 건지 모른 채 살아온 어둠을 오르는 길. “낮에 보면 역사이고 밤에 보면 신화가 된다. 역사가 오래되어 신화가 되었다.” 김성 교수님의 말씀처럼 지금은 어둠뿐이니 신화가 된 안티오코스 1세. 여명과 함께 환해지면 안티오코스 1세는 역사가 되는 걸까.     

      

 차곡차곡 발 내딛는 ‘콤마게네’는 지역 명칭이자 사람 이름으로 페르시아 제국의 귀족이었다고 하는 터키 아드 야만 주에 속해 있다. 코마 게네 왕국의 안티오코스 1세는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해 이 지역의 왕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바람이 세다. 일출 오기 전 자갈로 덮인 불가사의 한 거대 무덤 앞에 놓인 신전 및 석상들 하나 되어 풍경을 그린다. 지진으로 몸체는 제단에 머리는 바닥에 분리된 채 각자 놀고 있는 동쪽의 테라스 석상 아폴로, 콤마게네 여신, 제우스, 안티오코스 1세, 헤라클레스, 독수리, 사자 석상 앞으로 담요 뒤집어쓴 여행객들 설렌다.  

    

동쪽 테라스

 산 너머로 번지는 수정처럼 투명한 새벽빛 서서히 세상을 향해 윤곽을 드러내는 붉은 태양. 해발 2,000m가 넘는 곳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잠을 설치고 와도 아깝지 않을 장관이다. 잿빛 석상에 모래알처럼 햇빛이 부서진다. 투명하던 빛이 주홍색을 띠며 밝아지면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석상의 표정. 안티오코스 1세는 매일 새롭게 깨어나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겠지.       


 돌무덤과 석상에 내려앉은 붉은빛 파란 하늘과 대비를 이루며 사진으로 담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찍고 눈동자는 마냥 그네를 탄다. 아름다움이란 예쁜 것만이 아니라는, 쓸쓸한 것 적막한 것도 눈물겹게 아름답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단어가 아닐까 해를  등진 서쪽. 아르메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신의 혼합인 서쪽 테라스 왕과 신은 동격을 이루고 싶었던지 함께 조각된 석상들 너부러져 있다. 아득한 수천 년의 시간들이 스쳐간다.    

  

 거대 돌무덤과 일출을 기억에 담으며 터벅터벅 하산 길. 너부러진 석상들의 길고 긴 침묵 깊이 대륙의 동서를 잇는 중간 길목 콤마게네 왕국의 역사를 읽는다. 학교 다닐 때는 대충 스쳐간 세계사를 지금 이렇게 열공하고 있다니. 아시리아 제국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패망, 페르시아 제국이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침략해 그리스와 페르시아, 인도 등 대제국을 건설한다. 소아시아 지역은 서쪽의 로마와 동쪽의 파르티아. 두 열강 사이의 유일한 독립국이었던 콤마게네는 양쪽 지역을 잇는 무역 통로 성장한다. 타우루스 산맥이나 유프라테스 강을 가로지르는 통로에 통행세를 챙기면서 양쪽의 문화를 흡수해 외교를 펼쳐 부국이 된다. 그러나 시리아에 편입되면서 왕국의 역사는 사라진다.  

    

서쪽 테라스




 습도가 없어서 그늘은 선선한데 태양 볕 따갑다. 고대 그리스 비문이 새겨진 아르사 메이아(에스키 칼레)는 콤마게네 왕족의 여름궁전. 화려했을 과거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은 노지에 불과한 곳. 한 사람이 겨우 걸어갈 수 있는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발아래 천 길 낭떠러지 그 사이 비집고 위험을 넘은 위험으로 사진 찍고 있는, 찰나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거늘 죽음보다 더 강력한 비문의 위력이라 해야 되나. 신이 되고 싶었던 안티오코스 왕처럼 욕망과 열정이라 해야 되나 두 분 샘. 한 장의 비문 사진이 주는 강력한 힘이 무엇이지는 모르겠다. 다만 위험을 안고 찍어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진인지도 모르겠다. 유적이 문외한 아니 무식한 여행자인 나는 그냥 아슬아슬한 자리에 돌덩어리 하나 서있을 일뿐이다.   

     


미트라 테스와 헤라클레스의 악수

 

 유적지와 미트라 테스 무덤이 있는 동굴 위 안티오코스 부친 미트라 테스와 헤라클레스 악수하는 조각 부조. 머리와 등에 사자 가죽을 쓰고 도깨비방망이를 든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관심 갖고 만나러 오는 여행자는 몇이나 될까. 문명 답사 온 내가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하지? 가지안텝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는데. 

     

 유프라테스 강 상류 카흐타 강에 건설된 아치형 교각 젠데레 다리.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210년에 지었다는 코린트식 기둥 3개가 지키고 있다. 교각 아래 강물에 손 담그고 쉴 그늘이 없어 빙 도는 현기증.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다. 뜨거운 열기 폭폭 찌는 지열로 타는 목마름. 저 멀리 신식 다리까지 가는 일행들 한낮의 땡볕에 용기의 박수를 보낸다. 나는 다리 뒤편 그늘에 앉아 자갈들 물살에 조잘대는 소리 들으며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날것 그대로의 자연을 감상한다. 

 

젠데레 다리


카라 쿠쉬 독수리 탑을 시작으로 커다란 콤마게네 왕국의 미트리다 테스 2세의 어머니와 누이인 공주들의 돌무덤. 카라 쿠쉬 일대의 전경이 한눈에 담긴다. 태초의 것 인양 아무 흔적이 없는 고요한 땅 위에 억겁의 역사가 쌓여 있는 여기. 작지만 강력했던 고대 왕국의 사후 세계가 소리도 없이 그 곁을 일렁거리고 있다. 저 아래로 펼쳐지는 유프라테스 강 줄기에 풍덩. 태양 빛 관통하는 빛의 소리를 듣고 색을 뜯어내며 멍 때리는 이 순간, 고요 속에 침묵, 고요의 온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죽어서도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런 풍경일지 모른다는, 이 느낌 이 즐거움 조용히 간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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