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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Dec 23. 2019

1. 열하 가는 길

- 심양(선양)

 내가 만져야 할 것들이 만져지지 않아 모래알 같은 생각들 모아서 창공에 띄운다. 푸른, 거기 가스 가득 찬 허공. 구름이 하양을 가르고 하양이 구름이 되는 시간. 헛발 딛고 선 듯 외발로 선 듯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기울어진 왼쪽 팔이 오른쪽 어깨에게 토닥토닥. 언제 어떻게 추락할지 모르는 생각을 담고 그 생각들 버리며 오늘을 간다. 구름이 하늘에 안기는 소리. 하늘이 구름을 끌어당기는 소리. 소리가 소리를 부르며 내 몸 안으로 쿨럭이며 스며들면서 휴지가 먼지의 움직임을 담아내고 있다.   

    

 오늘이 도착한 곳은 후금과 청나라의 초기 수도였던 선경. 박지원이 다녀왔던 심양(선양)이다. 연암이 말하는 ‘길은 강과 언덕, 그 사이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길은 건물과 교통수단인 사이에 있다. 17세기에서 21세기를 건너뛴 길은 다양하게 공간이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심수강(헌화 강)은 양지바른 강이다. 이 강을 중심으로 음양이 있으며 심양의 이름은 이곳에서 유래되었다. 239년 전 연암이 건너고 소현 세자가 인질로 건넜던 잘 다듬어진 대교를 달린다. 급격한 공업화로 스모그 가득 찬 심수 강을 끼고 공원이 조성된 길 입구 다각형의 유리 건축물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제 모습을 뽐내지도 못하고 뿌옇게 미세먼지 옷을 입었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곳. 손톱 끝이 아리게 다가오는 곳. 목 늘어난 티처럼 당겨지지 않는 아픔이 도사리고 있는 곳.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더럽혀진 몸 그러나 환향녀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한 곳.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의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포로로 끌려간 공식적인 인원이 50~60만 명이었다는 가이드의 설명. 임금을 집권층을 잘못 만나 청나라의 노예로 팔려온 조선인 포로 인신매매시장이었던 여기에 서서 바라보는 남탑은 그때의 기억을 지우듯 그냥 하양이다.     

 



 흰색으로 회칠한 티베트 양식의 탑을 지나 청나라 초대 황제인 누르하치와 2대 황제 태종이 건립한 선양 고궁 들어서는 입구부터 빨강의 상가 건물들이 열 지어 있다. 고궁 들어서기 전 오른쪽 모퉁이에 서있는 커다란 비석 ‘하마비’ 황제 이외 그 누구도 여기에서부터는 말이나 가마를 타고 들어갈 수 없다는 한문, 만주어, 몽고어, 티베트어로 새겨져 있다.    

  

 선양 고궁은 북경의 자금성과 함께 중국의 2대 궁전이다. 건축물은 축조 시기와 기본 구조에 따라 동로에는 누르하치가 심양으로 수도를 옮긴 초기에 건설한 대정전과 십왕정이 있다. 대정전은 황제의 즉위식 및 결혼식을 하던 곳으로 팔각형 건축물은 몽고족의 게르와 닮은 듯 비슷한 것도 같다.

 중로는 홍타이지가 즉위 후 건설한 대청 문, 숭정전, 봉황루를 비롯해 홍타이지와 황후, 비의 생활공간이었던 청녕궁 · 관저 궁 · 인지 궁 · 연경궁 · 영복 궁 그리고 행궁과 태묘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는 건륭 시기에 증축된 문소각, 희대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격식을 중요시하지 않은 기마민족으로서의 자유분방함을 표현한 만주족의 건축양식이다. 


  


 대정전 앞 햇볕에 반사된 생각들을 모아 내 안에 밀어 넣으며 청나라 황실의 정통성을 확인했다기보다 황실의 전시물들을 물건 점검하듯 눈으로 찍고 있는 그러나 돌아서면 다 지워지고 마는 고궁을 나와 소현세자가 머물렀던 조선관 터로 간다.      


 비운의 소현세자. 강화도 조약과 병자호란에 의해 세자빈, 왕자, 조선의 관리들이 청의 불모로 심양으로 붙잡혀 가야 했던 조선관(심양관, 세자관)으로 가는 길. 선양 시립 소년아동도서관이 조선관 터라는 알고 있었지만 한중 연행 노정 답사 연구회 신영담 박사의 설명은 옛 덕성문에서 북쪽으로 100m가량 떨어진 현재의 유치원 자리가 조선관이 있던 곳이라 한다.    

 

 옛 터에는 지금 심양시 공로 건설 개발 총공사의 뒤 아파트 앞 합불 보보 유치원 건물이 들어서 있다. 조선관 그 어떤 흔적도 없이 유치원 뒤뜰 놀이기구 옆으로 바닥에 줄지어 늘어선 대파들이 생각을 끌고 간다. 구름 몇 장 뜯어 그늘을 만들고 있는 명·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의 왕세자와 강빈이 겪었던 8년 불모의 생활 그들의 정신과 흔적을 잊고 사는 나를 반성하는 의미로 여기까지 이끌고 온 걸까. 125년 전 우리 선조들이 다닌 길 추적추적 걸으며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되살려 보라는 … 

    

조선관 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주역이자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인조에게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게 한 삼궤 구 고두례의 황태종의 릉이 있는 정홍문 입구 들어서니 일직선의 도로 쭉 뻗은 양옆으로 황국이 반긴다. 


 북릉 공원 한복판에 늠름하게 서 있는 홍타이지 동상 빙 둘러 국화꽃으로 장식된 옆으로 일행과 떨어져 살짝 돌아서니 광대하게 펼쳐진 인공호수 위로 한가로이 떠다니는 커피 잔 모형의 배들 노을에 물들고 있다. 촉박한 시간 때문에 황제의 릉 까지는 가지 못하고 돌아서는 길 옆 시들시들 연잎들이 말을 건다. 슬픔에게는 슬픔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너무 깊게 끌어안고 가지 말라고 그러나 삼전도의 굴욕도 소현 세자의 아픔도 환향녀의 서글픔도 잊지 말라는 듯 조선시대의 발자국들이 말발굽들이 자꾸 따라붙는다.           


북릉공원 입구


홍타이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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