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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Jan 02. 2020

2. 열하 가는 길

--산하이관


 선양 북역. 웅장하고 휑하고 고요하다. 산해관까지 고속열차를 탔다. 열차의 좌석은 앞 뒤 공간도 넓고 편안하다. 추억 속의 밀차. 삶은 계란과 사이다에서 도시락과 맥주의 짜릿함을 주던 밀차가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졌지만 이 열차에서는 유니폼을 입은 판매원의 밀차가 쉼 없이 통로를 메우며 왔다 갔다.

        

 120년 전 우리 사행 단들은 고속철을 상상이나 했을까 뎅강뎅강 잘리는 어린이의 음성, 뒷 좌석 부스럭거리는 비닐봉지 고요를 깨우고, 까고 까도 알알이 박힌 생각은 머릿속에서 회오리치고 천정에서는 농한 불빛이 뭉그러지고, 모호한 감정들이 옆구리를 찌르는 시간, 어둠이 풍경을 지우고 길은 어둠을 몰아 그림자 바닥에 깔아놓는 산하이관 역사 철로는 밤을 깔고 간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자 시작점. 산과 바다 사이의 관 즉, '각산과 발해 사이에 있는 관문'이라는 산하이관의 아침 뿌연 스모그 가득하다. 아침 산책길 세계 마라톤 대회가 있는 도로 양옆으로 경찰관 듬성듬성, 하얀 비닐봉지에는 생수와 빵이 휴대용 의자를 지키고, 진행요원들 진입금지 차단막을 설치하고 있다. 미세먼지 주범 국가라는 눈 돌림을 위해 세계 마라톤대회를 자주 개최한다는 가이드 설명. 도로 차단으로 우리의 일정이 다소 변경되었고, 우회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산하이관은 군사적인 역할과 문화적으로 유목문화와 농경문화, 중원과 변방을 가르는 경계선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둘레 5km 높이 12m 두께 6m의 성곽 전체를 가리킨다. 안쪽을 관내, 바깥쪽을 관외로 구분하였고 이곳을 통과하여야만 중원의 진짜 중국으로 들어선다.


 사신들이 묵었던 숙소 앞 굳게 닫힌 문 앞 지나 허물어진 담벼락 부서진 집 지붕 위로 잡풀들 너울거리는 그 길로 쭈욱 전공관 철문을 지키고 있는 견공 한 마리 어디서 온 객이요 하고 묻는 듯 눈망울 동글동글.    

  


 연암과 사신단들이 북경을 가기 위해 통과했던 산하이관 동문 성루 ‘천하제일관’ 성벽 따라 오르는 입구 안내판은 중국어, 영어, 한국어로 ‘산하이관 명소 소개’가 있다. 조선시대의 사신이 된 기분으로 연암의 길 따라 오른다. ‘산관을 보지 않고는 중국의 제도를 알지 못할 것이다.’고 할 만큼 웅장함과 견고함.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고장 수원화성과 고향인 고창읍성의 성벽이 오버랩된다. 말 5 필이 나란히 달릴 수 있다는 넓은 성벽 위에는 100㎜ 포구의 '신위 대장군'이라는 대포가 길을 막고 있다. 소현세자의 글씨라는 현판 ‘천하제일관’ 지금은 모조 현판이 걸려있다. 성벽 곳곳에 군인 동상들과 대포나 과거 무기들 모형 전시품은 그 시대를 기억이나 할까. 성벽 밑으로 보이는 호수와 정자는 스모그로 부였다. 중국 전통가옥 경산 지붕의 마을은 개발되지 않아 허름한 옷으로 성벽을 따라온다. 마을의 중심지 마라토너들의 결승점 안으로 하나둘씩 들어오고 있다.     




 

 깐수성 자위관에서 여기 발해만까지 1만 6천 리 길을 휘몰아쳐 온 용이 바로 바닷물에 머리를 처박은 모습으로 보인다는 노룡두. 영해루 들어서니 광장 그리고 군사들의 체력관리와 놀이를 위해 만들었다는 미로게임. 팔괘진 바라보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내 안의 미궁과 팔괘진 안의 푸른 나무처럼 서있는 것 같아 빠른 걸음 재촉한다. 바다를 향해 2층 건물 징해루가 노룡두와 그리 맑지도 푸르지도 않은 물결 따라 발해를 내려다보고 있다. 2층에는 명말 손승종이 썼다는 '웅금만리’ 편액과 관광객이 몰려갔다 몰려오는 입해석성. 그리고 징해루와 입해석성의 사이 한 켠 '어비정', '임금의 비석이 있는 정자'주변으로 돌에 새겨진 시비들 열 지어 있다.     


 건륭제가 발해만을 보고 '한 숟가락 크기밖에 안 된다'는 비유로 표현한 '일작지다’비석 지나 '하늘을 여는 바다와 산'이라는 '천개해악'비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기며 바다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해신과 천후성모 모신 도교의 사원 해신묘로 가는 백사장 철 지난 바람이 몸 풀고 있다.   

     

팔괘진


노룡두


해신묘


 진시황 때 만리장성 건축에 인부로 끌려간 남편 범기량을 찾아갔다. 그는 오래전 죽었다는 말을 듣고 성벽에 쓰러져 울자 성벽이 무너지면서 남편의 유골이 나타났다는, 중국 4대 민간 전설의 하나인 맹강녀곡장성의 주인공인 맹강녀 사당. 봉황산에서 내려다보는 발해만은 물결치고 바위에 새겨진 망부석은 사행단이 왔던 그때의 붉은 글씨 그대로다. 그 앞에서 잠시 사행단의 일행이 되어보고 연암이 되어보는 시간. 어제는 오늘만큼 지나갔고 오늘은 내일 만큼 찾아오는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역사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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