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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Mar 13. 2021

포슬포슬한 바람 따라

-서오릉

문 밖 햇살이 경쾌하게 찾아와 노크합니다. 봄이 밖으로 나오라고 자꾸 손짓합니다.   

   

생각이 늘 길을 만들고, 마음이 늘 꽃을 피우듯, 오늘은 몸이 서오릉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아직은 살가운 꽃향기 없지만 바람만은 포슬포슬합니다. 마치 가마솥에서 막 꺼내온 분이 나는 수미감자처럼.      

코로나-19로 모든 게 조심스럽지만 그 조심스러움을 조심스럽게 건너가는 발걸음은 싱싱합니다.   

  

입장료 1,000원으로 한가롭게 듬성듬성 산책을 즐기는 발자국들에서 봄의 소리도 따라옵니다.  

 

재실

서오릉은 사적 제198호로 경릉·창릉·익릉·명릉·홍릉을 일컫는데, 혜윤과 경숙의 청량한 목소리를 실어 우리는 명릉인 숙종과 두 번째 인현왕후와 세 번째 인원왕후의 능인 왕의 길 따라 걷습니다. 박석이 들썩이는지 우리의 기분이 아작거리는지 몸이 자꾸 흔들거립니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은 동원 쌍분, 인원왕후 능은 오른편 언덕에 단릉으로 하여 이곳의 묘는 특이한 형식의 동원이강. 쌍릉과 단릉으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제실 옆 유모차는 일광욕을 즐기고, 엄마와 아이가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표정이 봄볕에 익어갑니다. 삼대가 함께 나들이 나온 모습 그렇게 바라보다 내 마음에 꽃이 피고 있습니다. 그 풍경이 아름다워서겠지요.     

명릉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 씨의 묘 수경원은 연세대학교 안에 있다가 1970년 9월 8일에 이곳으로 왔다는 소박한 묘를 지나, 숙종의 첫 번째 비 인경왕후인 익릉의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다른 능에 볼 수 없는 향로와 어로 길이 긴 간격을 두고 계단을 이루고 있네요. 

     

솔향기 그윽한 소나무길 계단 오릅니다. 흙길이 단단합니다. 수없이 오고 갔을 발자국이 다져놓은 계단의 끝에서 뒤돌아봅니다. 저 어디쯤에 머물고 있을 꽃망울들 활짝 웃는 날 우리 만나자는 기대로 하늘은 미세먼지로 부였지만 마음은 청명합니다.     

익릉
홍릉

영조의 비 정성왕후의 홍릉은 쌍릉 형식이지만 영조는 동구릉에 있어 올 수 없는 영조를 기다리는 왕후의 홍릉은 왠지 더욱 스산해 보입니다.      


능의 가장 끝에 자리한 예종과 안순왕후의 창릉 뒤돌아 경종의 생모 장희빈의 대빈묘. 구석진 자리에서 숙종과 인현왕후가 있는 명릉을 바라보는 희빈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그러나 어떤 감도 느낌도 오지 않습니다. 조선을 쥐락펴락한 여인. 숙종의 사랑과 사약을 온몸으로 받은 여인이 죽어서는 묏자리조차 초라한 그늘입니다.


의경세자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인수대비)의 경릉.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사극 속 주인공처럼 걸어봅니다. 익숙하지 않은 엄숙한 분위 자아내기도 전 수복방 툇마루에 걸터앉아 담소를 나누는 관람객 모습이 덕종과 소혜왕후의 봉분 간격처럼 참 멀리 느껴집니다.     

   

창릉
대빈묘
경릉
순창원

마지막으로 명종의 아들 순회 세자와 공회빈이 잠들어 있는 순창원에서 잠시 숙연해집니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세자와 왕비가 되지 못한 공회빈의 애잔한 마음을 바람으로 씻겨 보내며 나오는 길. 


자신의 속내를 우산살처럼 활짝 다 펼쳐 보이지 못하고 살았을 왕후들의 삶을 그려보다 나는 얼마나 우산살 다 보이도록 내 속을 펼쳐내며 살아왔을까. 잠시 내가 궁금한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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