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재 May 16. 2021

늦봄, 반나절

-천안 화수목 수목원

초록이 연두에게 말을 건다. 너의 시간은 지났다고 이제 초록의 시절이라고, 연두가 조금씩 색을 지워가며 초록 옷으로 갈아입는 아름다운 정원 화수목.  

   

화사한 꽃들이 정원을 장식한 베이커리 카페. 아들은 커피와 빵을 주문한다.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가격 대비 맛없는 커피와 빵. 매장 사용 영수증이 있으면 입장료가 무료라서 구입하게 되지만 입장료보다 음료 값이 더 비싸다. 물론 카페 이용료도 포함된 가격이겠지만. 그러나 카페는 낭만적이지 않는 듯 낭만적인 시원함과 경쾌함이 있다.     


야자수 아래 루피너스 화려한 옷 입고 방문객 반기는 갈림길 지나 이국적인 아치형 입구. 문 닫힌 레스토랑 옆구리 끼고 터벅터벅 오르막길 푸름이 눈을 즐겁게 하지만 마스크가 막아버린 향기 느낄 수 없다는 아쉬움. 바람과 새들 소리만이 귀를 가득 채운다.  

   

한적한 뒷산 산책로에는 자연생태 동물농장. 동물들은 보이지 않고 울타리만 너울너울 나무 그림자 엉기고 뒤섞인 채 내 그림자를 붙잡는다. 작약 꽃대 올리며 옹알이하는 꽃망울 금방이라도 말문 트일 것 같은 작약 푸른 잎에 쏟아진 빛. 모란과 작약의 애절한 그리움이 만들어 낸 그리스의 작약 꽃 전설이 길을 막는다.   

   


원목과 원목 서로의 기둥이 되어 몸 지탱하며 종균의 둥지를 뚫고 오랫동안 품었던 고뇌의 시간지나 표고버섯들 튀어나와 고개 내민다.


나의 시어들도 표고의 시간처럼 툭툭 쏟아나와 준다면 예쁠텐데 단어의 집이 부족한, 쉬 찾아오지 않는 시어로 나는 늘 허덕일 뿐 시 한편 써 내린지 참 오래된다.  


표고의 웃음이 열릴 때마다 바람이 뒤척이 듯, 나의 시나무에도 언어 주렁주렁 열리길 바라는 마음과 사람들 발자국 뗀 자리 소리가 고여 뒤척이는 버섯의 일상 바라보다 하얗게 단장한 수국 꽃에 넘겨주고 탐라 식물원 온실 안으로 스며든다.    

 

온실 천정을 뚫을 듯 야자수 활짝 잎 벌리고 감귤은 주렁주렁 새콤함이 입 안 가득 차는 듯  군침이 돈다. 현무암으로 치장한 돌 모루 개울 길. 마치 제주도에 온 듯하다. 수염 틸란드시아와 작별하고 아산 신정호수에서 어정거리다 옆길로 새어 모나무르 카페에 왔다.  




-아산 모나무르 갤러리 카페

담담한 건물 외부에서 보기와는 달리 자동문을 열고 들어서면 워터가든 푸른 하늘이 물 위에 떠있다. 햇볕에 빛나는 구슬 알갱이 윤슬이 속삭이듯 어서 오라 한다. 야외 탁자 군데군데 여인들 다정함이 풍경과 어우러지고, 커피콩 로스팅되어 튀어 오르듯 고소한 언어들이 워터가든 윤슬로 반짝인다.     


야외 갤러리 소소한 작품들이 눈길을 잡는 길. 타박타박 ‘바람소리 연못’에는 힘없이 솟는 분수와 나는 우주로 향하는 공기 속으로 빨려 들고, 바람의 양 따라 서성이는 나뭇잎은 수시로 표정 바꾸며 천의 얼굴 만들고 있다.    

  


 실내 갤러리로 들어선다. 최선길 작가의 ‘천년의 노래’처럼 나무의 사계절이 콘크리트 벽을 타고 솟아있다.     

 

“관념의 눈으로는 매 순간 변하는 현상을 쫓아 그려낼 수 없다. 나무와 맞닥뜨린 인상을 그 현장에서 기록한 그림이다.” 작가의 말처럼 매번 변하는 자연을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 이 아니다. 그럼에도 관찰과 기록으로 그려낸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연두에서 초록으로 가는 나무와 오늘 나의 외출이 합으로 다가온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창 밖 노을이 가로수길 휘어지게 핀 이팝나무 꽃들 하루를 번역하고 있다. 더욱 진한 색을 입히며 가는 늦봄.    

           


작가의 이전글 포슬포슬한 바람 따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