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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Nov 18. 2019

12. 그림 속의 케밥

--카파도키아

  내 기억의 창고는 참 가볍다. 희뿌연 안개로 가려진 뚜렷하지 않아 어떻게 옮겨야 할지 모를 문장의 시작이다. 카메라의 침묵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세히는 아니어도 열심히 보았건만, 가끔씩 기억이 가물가물 부유하는 생각들. 손가락 사이사이 모래 알갱이처럼 빠져나가는 단어들.       

 터키와 시리아 국경 부근 타우루스 산맥의 산록 지대에 있는 신 히타이트 시대의 유적 카라테페 숲 속 인적 드문, 작은 박물관 조각난 부분 이어 붙인 생명나무 부조에 내 마음 쪼개어 쪼금 걸어놓고 북쪽 문 간다. 숲길 일가족의 나들이 친구들도 만날 수 있는 열려있는 박물관. 다각형의 성벽 안 아시타완다스 궁전. 북쪽 입구와 남쪽 입구로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 덮인 궁전 입구에는 후기 히타이트 시대에 궁전을 장식했던 석판에 신상, 연회, 부조 오르토 스타트 풍성했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시타완다스 왕의 비문인 장문의 페니키아 문자와 히타이트 상형문자로 씌어진 글이 발견되었다는 여기 넘어 다소 간다.      


 사도 바울 시대 이후로 시간이 멈춰버린 듯 고요함만이 도사리고 있는 마을. 바울이 마시고 자랐다는 우물은 큰 바퀴를 돌리는 도르래로 손을 움직여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린다. 어릴 적 시골 풍경이다. 이곳 우물의 깊이가 38m라고 하는데 굳게 닫힌 우물 안 들여다볼 수 없고, 바울의 집터는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유리 밑에 보존 유리에 반영된 하늘만 푸르게 반짝인다. 


 삼두정치를 이끌었던 안토니우스가 문책을 핑계로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를 타르수소로 소환 하자 크레오파트라가 이문을 통해 들어왔다는 도로변에 황망하게 서 있다. 옆구리 부서진 채. 

 클레오파트라는 BC69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셋째 딸. BC51년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고 왕위에 즉위하였고 이집트 고유어, 그리스어 등 여러 나라의 언어에 능통했으며 이집트 고유문화와 신앙, 전통을 존중하고 학문과 예술을 권장했던 여왕이다.      


 버섯바위 요정 굴뚝으로 유명한 카파도키아 네브쉐히르에서 열하루 만에 한국, 중국 관광객을 만난다. 고요하고 무겁고 대답 없는 유적지 돌들 사이 무수한 말들이 머릿속을 기어 다니며 꿈틀거리다 미끄럼을 탔던, 그런데 갑자기 소란스럽고 북적거리며 출렁이는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이 자리가 휘어지고 있다.      

    

 점심 항아리 케밥 뜨겁게 달구어진, 항아리가 쏟아내는 고기와 야채들 아우성이다. 마치 이 식당 가득 찬 목소리들처럼 그러나 내겐 식탁 위의 그림이다. 야채샐러드는 지저분할 정도로 잘게 잘게 조사 놓아 맛을 잃게 하고, 우리 입맛에 맞게 국물 자박자박 항아리 케밥은 먹을 수 없다. 미지근한 물에 식빵 한 조각 풀어 꿀꺽, 내 마음 같아 조금은 슬픈 조금은 안타까운 그러나 돌아가면 그리울 여기.  

    



 보이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괴레메는 비잔틴 시대에 암굴을 파서 지은 교회가 많다. 예수의 생애를 묘사한 벽화가 있는 사과 교회 들어가는 입구부터 북적인다. 입구에 앉아 누가 사진 찍나 감시의 눈길 버리지 않는 관리인. 틈과 틈새로 찍는 사진들 얼마나 소중할까.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성 헬레나의 초상화가 있는 뱀 교회의 가장 인상적이었던 성화는 성 오누프리오스. 벌거벗은 몸을 수염으로 가리고 있는 성인은 원래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에 남자들이 계속 괴롭히자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이처럼 추한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추한 성인의 모습이 안타까워서였을까. 기억에 담아둔 것은.     


 요동치는 배앓이로 암굴교회 볼 수 없는 아쉬움. 일행과 잠시 헤어져 교회 입구에 사과나무가 있어 붙여진 사과 교회 앞 그늘진 곳에 홀로 앉아 흘러갔다 밀려오는 관광객들 붙잡고 있는 내 시선. 그러나 마음은 끝이 시작이고 시작이 끝인 가지 못한 동굴 속에 있다.      


 청색 염료는 신약을 바탕으로 그려졌다는 그래서 푸른색의 벽화가 아름다운 토칼르 교회. 수테에서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의 성서의 내용을 충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레스코화가 카파도키아의 하늘 닮아 더 푸르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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