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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Aug 22. 2020

계절의 경계

한 계절의 절정이 지나고 가장자리를 걷다가, 소회

  풀벌레 소리가 은은한 밤이다. 요즘, 문을 열어두면 부쩍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올여름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고 입추가 한참 지나서야 늦더위가 시작되었지만 밤에는 조금씩 다른 계절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이렇게 서서히 계절이 지나간다. 아직 여름의 절정이 온 것 같지 않은데도 이제 여름이 지나가는 것만 같다. 지루한 장마 끝에 코로나 19가 다시 심각해져서인지 여름날이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아름다운 여름의 절정은 오지 않고 이 계절이 지나가는 듯 하지만 밤이면 들려오는 청명한 가을 풀벌레의 소리는 반갑다. 귀뚜라미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제 또 다가올 가을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느껴진다. 알 상태로 땅 속에서 월동하다가 일 년 중 8월에서 10월에 성충으로 사는 귀뚜라미. 날개를 비비며 울음을 울고, 짝을 찾고 영역을 지키며 풀숲에서 까만 밤을 사는 그들의 계절은 또 어떤 색일지 궁금해진다.


 가을 풀벌레 소리가 사라질 때쯤에는 이미 가을은 절정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가을, 공원에서 어떤 나무부터 잎이 떨어지는가를 관찰했던 적이 있다. 관찰 결과, 가장 먼저 꽃이 피었던 벚나무부터 잎이 지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그 자리에는 늘 햇빛이 따스하게 내려왔고, 그 빛을 받아 유일하게 먼저 꽃을 틔웠던 벚나무였다. 먼 데서 보면 다른 잎들은 가을 잎으로 무성한데 혼자서 하늘에 가지를 내준 모습이 처연해 보였다. 늘 바라보던 공원이었으므로 공원의 나무들을 지금도 한그루 한그루 기억하고 있다. 먼저 빛을 받은 것은 먼저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경계에는 몸이 자연스럽게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그럴 땐 자주 나가서 걸었다. 걷다 보면 나의 숨이 데워진 덕인지 움츠러들던 어깨도 펴지고 선명한 계절이 보이기 시작한다. 겨울의 하늘을 본 적이 있는지. 찬 바람에 살 얼음이 얼어 유난히도 파랗고 높아 보이는 하늘, 그 아래 가을 잎 몇 장이 매달린 앙상한 나무들은 지난 계절의 수호자 같기만 하다. 시인의 눈을 빌어 그 시간을 잠시 들여다본다.

자세히 그 숲을 들여다보면
차마 떨구지 못한 몇 개의 가을 잎 달고
선 나무가 있다 그 나무가 못 버린 나뭇잎처럼
사람들도 살면서 끝내 버리지 못하는
눈물겨운 기다림 같은 것이 있다
겨울에도 겨우내 붙들고 선 그리움 같은 것 있다
                                                         
- 도종환 시인의 [가을 잎] 중


 그리움으로 마음을 데우며 얼어붙은 것들에 연민을 가지고 계절을 보내고 나면 겨울과 봄의 경계에 선다. 봄이라 하는데 여전히 겨울 같은 시간들이다. 옷은 한겨울보다 얇아졌는데 바람은 차고, 여전히 죽은 것만 같은 나무들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였을까. 그 경계에 태어난 나는 3월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생일 즈음에 한 번은 광양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남쪽의 햇살이 따스해서 그런지 아랫녘에는 매화꽃이 지천에 피어있었다.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 땅 위에 핀다는 매화를 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찬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가지마다 환하게 핀 매화꽃이 얼마나 눈부셨던지. 내 생일엔 매화가 피는구나. 온갖 꽃이 피기 전에 맨 먼저 피는 그 용기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겨울과 봄의 경계에 피어나는 매화 덕에 3월을 애정하게 되었다. 애정을 가지고 보면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죽은 것 같은 나무들의 색이 짙어지고, 서릿발 사이에도 녹색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새로운 것들도 들린다. 나무에 귀를 대고 있으면 부지런히 물을 나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삼월은 어쩌면 봄이 가장 치열한 순간이다.


 봄의 한가운데를 지나 녹색에 마음이 물들고 잔뜩 푸르러지면 어느새 봄과 여름의 경계를 걷는다. 녹음이 푸르러지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의 마법이다. 봄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는 그 경계를 나는 가장 좋아한다. 강한 햇살도 그늘을 이기지 못하고, 나무와 풀꽃들에서는 아주 좋은 향기가 난다. 저녁이 길어지고 향긋한 초여름의 향기를 맡으며 여유롭게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 또한, 그즈음에는 나무 아래 흙 사이에 퐁퐁 구멍이 뚫린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매미 유충이 7년간의 시간을 땅 속에서 보낸 후 지상으로 나온 흔적이다. 한 번은 운이 좋아 매미 유충이 탈피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해가 지고 적당히 어두워졌을 때 땅속에서 올라왔을 유충은 제법 억샌 풀잎에 가만히 매달려 있다가 등을 찢고 나와 투명하고 푸르스름한 매미가 되었다. 갓 탈피를 마친 매미는 투명하다. 까만 눈을 들고 날개를 말리던 푸른 매미를 잊지 못한다. 아마도 매미는 그의 계절을 치열하게 살았을 것이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계절이 바뀌지만 바뀌는 그 경계에서 치열하고 아름다운 시간과 생명을 만나서일까. 계절의 가장자리를 걷다 보면 나의 감각들이 깨어나는듯하다. 한 계절이 끝나고 다음 계절이 오기까지 익숙함을 뒤로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자연의 낯이 생생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변화를 받아들여야 새로운 계절이 온다. 한 계절의 절정에 머물러만 있다면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계절을 맞기는 힘들 것이다. 사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 갑자기 떠오른 건 이미 계절의 경계에 들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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