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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Aug 20. 2020

틸란드시아에 핀 진짜 꽃

식물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다

 비가 많이 내렸던 날, 파주에서 데려왔던 틸란드시아에 꽃이 피었다. 정확히 말하면 틸란드시아 스트릭타에 꽃이 피었다.


 틸란드시아는 파인애플과에 속한 다년생 식물로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고 하는데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은 수염 틸란드시아와 틸란드시아 스트릭타.


 수염 틸란드시아는 대단히 가는 줄기에 가느다란 잎이 어우러진 모습이 신비로웠다. 수염 틸란시아의 잎은 트리콤이라는 은백색의 미세한 솜털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것으로 공기 중의 수분이나 유기물을 흡수하여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공기정화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한 때 유행하여 카페 등지에서 많이 봤었는데 집에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느다란 줄기만으로 푸른빛을 띠며 작은 코코넛 화분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수염 틸란드시아를 보니 봇짐을 진 스너프킨이 생각이 났다.(스너프킨이라고 아시나요? 무민이라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여행자인데 제가 무척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스너프킨을 닮은 수염 틸란드시아는 그렇게 들이게 되었다.


 수염 틸란드시아만 데리고 오기엔 좀 허전한듯하여 좀 더 화원을 둘러보는데 눈에 띈 것은 바로 틸란드시아 스트릭타였다. 눈에 띈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제법 커다란 토분에 날개처럼 펼쳐진 잎들 사이로 핀 분홍빛 꽃 때문이었다. 그 꽃이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척박한 곳이라도 물을 잔뜩 머금을 수 있어.
안개 방울이건, 빗물이건 어디에서도 나는 물을 찾지.
그래서 뿌리도, 흙도 없어도 이렇게 꽃을 피우는 거야.

그렇게 틸란드시아 스트릭타 꽃에 반해 스트릭타도 함께 데리고 왔다. 보고 좋아서 선뜻 데리고 오기는 했는데 과연 잘 키울 수 있을지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신비한 모습에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여다보곤 했다. 틸란드시아 같은 착생식물은 다른 식물 위에서 자라지만 필요적으로 숙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 태도 또한 마음에 드는 것이다. 오히려 숙주 식물이 물이 마르는 것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욕심 없이 순간순간을 푸르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그렇게 오랫동안 내리던 장마도 그치고, 멀끔해진 하늘이 멀리 보였던 어느 날, 문득. 틸란드시아를 가끔 물에 흠뻑 담갔다가 말려주라고 하던 화원 직원분의 말씀이 생각났다.(식물 백과를 찾아보니 너무 오랫동안 담가두면 은백색의 영양분을 수집하는 트리콤이 녹을 수 있으니 적당히 담근 후에 물기를 완전히 말려주라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삼일에 한번 정도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에 좀 담가볼까 하고 갔더니 스트릭타에 진짜 꽃이 환하게 피어있었다. 내가 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촘촘히 겹쳐져있던 꽃대였던 것이었다. 진짜 꽃은 그 분홍빛 겹겹의 꽃대가 한 겹씩 벌어지면서 몸체 가운데서 별을 담은 순수한 모습으로 피어났다. 연한 분홍의 꽃잎이 영롱하게 피어난 모습은 지루한 장마 끝의 선물이었다. 꽃대가 여러 장이었던 만큼 꽃도 여러 송이가 함께 피어올랐다.


 틸란드시아 스트릭타는 다음 세대의 잎이 모체보다 더 단단해지고 더 커진 꽃대를 올린다고 한다. 이번보다는 좀 더 나은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스트릭타의 삶이 희망과 묘하게 닮았다. 수염 틸란드시아도 가느다란 잎 아래로 예쁜 꽃을 피운다고 하니 잘 키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요즘 같은 때 녹색 친구들을 들이고 그들을 돌보는 것이 위로가 된다.  식물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많은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가운데 봉오리가 꽃인 줄 알았던 틸란드시아 스트릭타
분홍 꽃대에서 작고 소박한 진짜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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