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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Sep 20. 2020

무화과잼을 만들며 떠오른 그때

날카로운 첫 수제잼의 기억

 

 인류가 최초로 재배한 과일이라고 알려진 무화과는 요즘이 제철이다. 지중해나 중동 지역에서 많이들 먹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전남 지역에서 9월 전후에 주로 생산한다. 그래서 요즘 마트에 가면 무화과가 많이 보인다. 무화과를 좋아하는 나는 요즘이 참 행복할 수밖에. 무화과는 단백질 분해 효소가 있어 고기 먹은 후에 먹어도 좋고, 치즈와 함께 먹어도 좋고, 바게트나 토스트 위에 올려 먹어도 너무나 맛있다.


무화과는 생으로 이렇게 잘라 먹을 때가 제일 맛있습니다.


 

 이렇게 무화과는 생과로 빨리 먹는 게 제일 좋지만  금방 무르기 때문에 주로 말리거나 잼으로 만들어 먹는다. 나도 주말에 무화과를 한 박스 사 와서 달콤한 생과를 먹다가 남은 무화과로 잼을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무화과를 깨끗하게 씻어 적당히 자른 후에 설탕도 눈대중으로 무화과 무게만큼 적당히 넣고 뭉근하게 끓인다. 끓이면서 목이 긴 나무 주걱으로 천천히 저어주었다. 끓이다 보니 너무 뻑뻑한듯하여 물도 살짝 넣고 삼십 분쯤 졸이다 마지막에 레몬즙을 살짝 넣어주니 달콤한 수제 무화과잼이 만들어졌다. 무화과잼을 만드는 달콤한 냄새에 아이들은 어서 식빵에 발라서 먹어보고 싶다며 신이 났다. 그 모습을 보니 십여 년 전 처음으로 잼을 만들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주 달콤했던 포도를 가지고 야심 차게 만들어봤던 잼이었다. 하얀 식빵에 잼을 발라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엄마표 잼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만들었던 수제 포도잼은 맛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맛도 못 보았다. 보들보들한 식빵에 상큼 달콤한 포도잼을 쓱쓱 발라서 먹어보지도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유인즉, 너무 오래 끓인 탓에 잼이 딱딱한 사탕이 되고만 것이다. 분명 포도잼을 저어가며 만들 때는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는데, 뜨거운 온도에서는 진득한 잼이었던 것이 식으니 딱딱하게 굳어져버렸다. 아이들은 그거라도 먹어보겠다고 숟가락으로 잼을 퍼보았지만 숟가락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결국은 그대로 딱딱한 잼을 버리고 말았었다. 찬물에 끓인 잼을 넣었을 때 잼이 적당히 뭉쳐지면 그만 끓여도 된다는 후기를 여러 번 읽었지만 그 적당함을 찾는데 실패한 탓이다. 깨끗하게 씻어 끓이면서 씨와 껍질을 분리하고 유기농 설탕을 듬뿍 넣어 만들었건만. 이리저리 신경도 많이 쓰고 좋은 재료로 마음을 쏟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처음은 이렇게 서툴고 어려운 걸까.


 실패했던 첫 수제잼의 기억 탓에 한동안, 역시 잼은 만들지 않고 사 먹는 거라 생각했지만, 4월 끝물에 나오는 딸기들, 11월 끝물에 남은 사과들, 기대하고 샀지만 밍밍했던 복숭아를 만나면 “저거 잼으로 만들어 먹으면 딱인데” 싶은 마음은 꾸준히 올라왔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다시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딸기가 비쌌을 때를 생각하면 끝물의 딸기는 얼마나 싸고 풍성한지. 만원어치만 사도 잼 두통은 충분히 나왔다. 단맛을 기대하고 샀던 밍숭한 복숭아도 설탕을 듬뿍 넣고 잼을 만들면 달콤하게 먹을 수 있고, 단맛은 없고 시기만 한 포도도(포도잼도 다시 도전해보았답니다) 근사한 수제 포도잼으로 변신했다. 사과도 마찬가지. 먹고 남은 쭈굴쭈글해진 사과들을 깨끗이 씻어 사과잼을 만들고 나면 상큼한 그 맛에 겨울 내내 행복했다.


 처음은 분명히 실패였는데 신기하게도 지금 생각해보면 성공이다. 그래서 오늘처럼 무화과를 먹다가 남은 과일 약간으로도 휘리릭 잼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의 실패에 우리가 좌절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의 실패를 실패로 남겨두지 않고 계속해보는 것. 짧은 시간 내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초조해하지 말고 꾸준히 도전해보는 것. 그러다 보면 그 실패들의 경험들이 조금씩 능력치를 키우게 되고 그것이 꽤 나쁘지 않은 결과들을 만들어 낸다. 꽤 나쁘지 않은 결과들이 조금씩 모여 그럴듯한 결과를 만드는 것이고. 처음이 완벽하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서툴고 어렵기 때문에 그것보다 더 나은 다음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무화과의 이름이 무화과인 이유는 무화과 모습 때문이다. 겉으로 봐서는 도저히 꽃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아예 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화과의 꽃은 무화과 속의 붉은 부분이라고 한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열매껍질은 꽃받침이며, 빽빽한 꽃들이 모여 열매 속, 보이지 않는 곳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남들이 저마다 보이는 곳에 꽃을 피우고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낼 때, 무화과는 내부로 꽃을 피운다. 혹시 누군가 어떠한 일들로 처음의 날카로운 실패에 슬프거나 쓰려한다면, 긴 삶의 사이클로 봤을 때 우리는 결국 좋은 쪽으로 나아갈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무화과처럼 안이 꽃으로 환환, 내면이 강한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말이다.


 


 

먹고 남은 무화과로 만들었더니 잼 한 병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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