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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Sep 27. 2020

맑은 계곡을 보면 왜 발을 담그고 싶을까

발목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인데도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계곡에만 가면 한결같이 한 행동들이 있다. 물가로 내려가서 물이 얼마나 맑은지, 물이 품고 있는 돌들이 얼마나 영롱한지 한 번 바라보고 나서 발을 담그는 것이다.


 이른 봄에는 아직 계곡물이 차기에 슬그머니 발을 담근다. 그러고는 금방 나와서는 “정말 차갑다!” 한다.(당연히 차가울 것인데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온도보다 실제는 좀 더 하드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다 여름이 되면 좀 더 적극적으로 참방 거리며 발을 담근다. 그러다 발목이 끊어질 듯 시리면 얼른 근처 돌 위로 한 발짝 올라간다. 그리곤 다시 슬그머니 발을 담가본다. 여름이라도 울창한 산림의 계곡물은 여전히 차갑기 마련이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의 힘을 빌어 좀 더 물속에서 버텨보는 것이다. 그러다 그 얼얼한 발마저 적응이 되고 나면 계곡 사이를 돌아다니며 다슬기며 올챙이도 잡아보고 한나절을 싱그럽게 보내본다.

 

 가을에는 등산하기 좋은 계절. 지인들과 몇 해 전 가을에 금오산을 오른 적이 있다. 저마다 가방엔 김밥이며, 오이, 초코바 등을 넣고 한 걸음, 한 걸음 산이 주는 계절의 변화에 놀랄 준비를 하고 숲길을 걸었다. 조금씩 붉어지는 잎들을 지나치며 정상에 오르니 열심히 흘렸던 땀방울이 바람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다리는 뻐근했지만 보람된 순간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만난 계곡. 누구도 먼저랄 것 없이 다들 계곡에 발을 담갔다. 바위 자락에 앉아 시원한 계곡에 발을 쭉 뻗고 있으니 등산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을 받았다.


 겨울에는 선뜻 발을 담그기가 어렵다. 겨울에 만난 계곡의 대부분은 얼어있거나 살얼음이 껴있었으니까. 그럴 땐 톡톡 발로 얼음을 건드려본다. 그러다 툭하고 얼음이 깨져 동면하는 작은 물고기들을 깨우기라도 하면 괜스레 미안해진다. 나로서는 참 한결같다. 계곡물을 보면 발을 담그는 것이.

그렇다면 왜 발일까?


 발은 늘 오르고, 걷고, 움직이고, 뛰면서 때로는 우리를 이끌며 제 무게보다 큰 하중을 견딘다. 신체의 2%만으로 우리의 몸을 지탱한다고 하니 발이 평소에 얼마나 힘들까 싶다. 실제로 발에는 작은 근육들이 모여 있어 쉽게 피로를 느낀다고 하니 그야말로 묵묵히 견디는 발이다. 그래서 산을 오르며, 계곡까지 가면서 그렇게 피로해진 발을 물속에서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발을 담그는 것이 아닐까.


 그 발에게 자연의 맑은 물소리를 듣게 해 주고, 영혼을 울릴 것 같은 시린 청량감을 주고, 올망졸망 모여 있는 계곡의 조약돌을 밝으며 은근슬쩍 마사지도 해주고, 하늘이 다이빙 한 물속에서 푸른 꿈을 꾸게 해주고 싶다.


 한편으로는 가장 맑고 아름다운, 시리기까지 한 숲의 샘물에 심장을 담그지 못해 발을 담그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발은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혈액을 다시 심장에게 보내준다. 엔진과도 같은 심장은 내부에서 우리를 살리고, 발은 몸의 뿌리로서 우리를 살린다. 그래서 발을 제2의 심장이라고들 한다. 계곡은 산의 핏줄과도 같이 흐르며 산의 생명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된다. 생명과 생명은 서로 만나 조우하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제2의 심장인 발을 담가보는 것이 아닐지. 발은 감각의 최전선에서도 생생하게 아름다움을 받아들여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 맑은 계곡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에너지를 느끼면서 말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설레는 요즘. 작은 가방 하나 메고 산책하듯 산에 올라 반가운 계곡을 만나고 싶다. 싱그러운 계곡에 발을 담그고 바위에 걸터앉아 따스한 햇살과 청명한 바람을 느끼며 그렇게 발을 쉬게 해주고 싶다.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시리던 계곡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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