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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Oct 18. 2020

불행을 딛고 나가는 힘

베토벤 교향곡 7번을 들으며.

 


 꽉 막힌 도로의 시작은 낭만 가득한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피할 수 없는 존재다. 처음엔 소소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긴 행렬을 이겨보지만, 끝도 없이 들어오는 차들의 빛이 길어질수록 멀어지는 도착 시간을 헤아리다 보면 말들이 줄어든다. 그러면 어느새 라디오 볼륨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 듣는 음악과 이야기들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날은 마침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으로 베토벤 교향곡 7번을 비교 감상하기를 하고 있었다. 교향곡 3번, 5번, 9번 등에 비해 7번은 다소 낯설게 느껴졌는데 연주를 듣다 보니 평소에 영화 음악 등으로 익숙하게 들었던 선율이다.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하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와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비교 감상 포인트를 짚어주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곡의 분위기와 빠르기를 느끼며 같은 교향곡을 두 번 이어 들으니 교통체증을 완전히 잊을 정도로 깊이 빠져들었다. 코로나 시대 비대면으로 차에서 감상하는 음악회가 된 것이다. 


 베토벤이 교향곡 7번을 작곡한 때는 여러 변화와 어려움으로 작품활동이 주춤하던 시기였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전쟁으로 후원자들이 빈을 떠나게 되어 후원을 받지 못하게 되기도 했고, 건강도 악화되어 교향곡 7번 초연 당시 이미 청력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악장과 4악장을 듣고 있으면 밝고 즐거운 기분이 느껴진다.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또한 2악장은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장송곡풍의 주선율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교향곡 3번 “영웅”에도 장송곡에 해당하는 악장이 있다. 2악장은 장엄함이 느껴지는 장송행진곡으로 현재도 장례식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다. 이 교향곡은 베토벤이 거의 들을 수 없었던 시기에 작곡한 후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작곡가에게 청력 상실이란 커다란 불행이었을 텐데 장대하고 힘이 넘치는 창작을 보여준 베토벤. 그 불행을 딛고 일어선 의지는 어디서 왔을까.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은 멀리서 들려오는 플루트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도 나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는 목동의 노랫소리 또한 나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그럴 때면 나는 절망의 심연으로 굴러떨어져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그런 생각에서 나를 구해 준 것은 예술, 오직 예술뿐이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중 -

 1801년 베토벤은 의사로부터 청각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빈 교외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을 했다. 그러나 귓병이 전혀 차도가 보이지 않자 자포자기에 빠지고,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유서를 썼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 베토벤은 심리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불행의 바닥까지 내려갔던 것이 아닐까. 그곳에서 그 불행을 이어 갈 것인지 불행을 딛고 역동적인 삶으로 나갈 건지 고민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불행을 이긴 덕분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으로 위로받게 되었다. 좌절과 절망을 스스로 죽여가며 내면에서 떨쳐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교향곡 3번 영웅의 장송행진곡은 험한 시련에 좌절하고, 고뇌하는 죽음을 딛고 영웅이 탄생하는 플롯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우리 동네 극장 벽에는 찰리 채플린이 남긴 유명한 명언이 멋진 캘리그래피로 전시되어 있다. 찰리 채플린은 가난과 어머니의 정신분열 증상과 아버지의 가출 등으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희극배우, 영화감독, 음악가 등으로 성공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명언에는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극장에 갈 때마다 이 문장을 읽는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삶은, 불행과 불행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붙잡히기도 하지만 그것을 이기고 희극으로 만드는 힘 또한 우리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긍정의 시선과 불행을 이기려는 의지들, 행복을 바라는 마음과 행복을 스스로 찾아가는 역동적인 힘은 다 내 안에 있다고. 그래서 오늘날,베토벤의 음악에서 감동과 울림을 느끼는 것은 그가 삶으로 보여준 모든 과정 때문이리라. 


 막히는 도로에서 비대면 차량 음악회로 베토벤 7번 교향곡을 듣고 난 이후, 베토벤의 음악을 좀 더 찾아서 듣고 싶어졌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라 예전 같으면 기념 연주회도 많았을 텐데 코로나 때문에 꽤 많이 취소되어 아쉽다. 하지만 집콕하는 주말에 여유를 가지고 베토벤 교향곡 전곡 감상을 해보려 한다. 불행을 딛고 환희로 나가는 그 영화 같은 여정을 응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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