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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Oct 25. 2020

나의 그리움 사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것들이 많은 사람은 그리움 부자입니다

 주말이면 자주 자전거를 탄다. 아침으로 먹을 바게트나 소금빵을 사러 가기도 하고,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오기도 한다. 아이들 책 한 권씩 사주러 갈 때도  일부러 자전거를 타고 다녀온다. 가까이 사는 친구 집에 갈 때도 자전거를 타고 휘리릭 간다. 야외테이블이 있어 꽃들을 보며 커피 한 잔 하기 좋은 그 카페에 갈 때도 자전거를 타고 가서 티타임을 즐기고 온다. 마스크를 사러 갈 때도 일부러 집에서 좀 떨어진 약국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다. 그러고 보면 나는 자전거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겨울에는 자전거 타기가 뜸해지고, 봄에는 부드러운 바람과 포근한 햇살 덕분에 부지런히 자전거를 타게 된다. 날이 더워지는 여름에는 이른 아침에 자전거를 타면 상큼한 풀냄새를 맡으며 라이딩을 할 수가 있다. 그러다 가을의 초입이 되면 다시 보들보들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탄다. 상쾌한 계절의 향기를 담아주는 마시멜로같이 포근한 바람을 만나는 것이 자전거를 타는 가장 큰 이유이자 즐거움이다. 그래서일까. 함께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바람을 즐겨봐. 날이 차가워지면 그리워지게 될 거야.

 

 그리고 부드럽던 그 바람은 이내 그리움이 되었다. 어제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자전거 라이딩을 나갔다가 계획한 일정보다 일찍 돌아오며(공원에 가서 먹으려고 쌌던 도시락은 집에서 맛있게 먹었답니다.) 그리움 사전에 또 하나가 추가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의 그리움 사전에 켜켜이 들어있는 그리움들을 열람하며 오후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다림. 쏟아지는 봄햇살을 받으며 하교하는 1학년 꼬마를 기다렸던 날들. 교정에는 온갖 봄꽃들이 피어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교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익숙한 옷자락이 보이면 설레기까지 했지. 책가방을 맨 모습을 보고 언제 커서 이렇게 학생이 되었나 했는데 그 아이가 어느새 졸업반이 되었다.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 오늘이 어제보다 크고, 올해가 작년보다 부쩍 자랐다. 그래서 매일이 새로운 아이다. 새로운 아이를 만나는 건 늘 반가운 일이지만 어제의 아이, 꼬꼬마였던 아이들의 모습은 늘 그립다.


 나무들. 어느 겨울날 삼나무가 멋진 곳으로 캠핑을 갔었다. 키 큰 나무들 사이에 작은 텐트를 짓고 하루를 보내며 무심한 듯 다정한 이웃처럼 곁을 내준 삼나무들이 그저 고맙기만 했던 적이 있다. 얼음같이 차가운 땅속에 발을 묻고 미처 녹지 못한 눈을 털어내지도 못한 채 그렇게 서있으면서도 봄을 준비하고 있던 나무들에게선 신비로운 힘마저 느껴졌지.


 그리움 사전에서 몇 가지를 꺼내 열람을 하는데 창밖은 온통 가을이다. 어느새 잎들이 저렇게 붉어졌을까. 무성한 그늘을 내주던 푸른 나뭇잎들은 이제 그리움이 되고 지금 붉어지고 있는 찬란한 가을의 잎새들은 이내 그리움이 되겠지. 지금의 아름다움을 사진 찍듯이 마음속에 간직하려 한다. 멀리 가지 않아도 집 옆, 가까이에서 가을빛을 받으며 찬란히 빛나는 가을의 잎들. 그 잎새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런 날이면 햇살과 가을빛을 모으는 프레드릭이 떠오른다. [프레드릭]은 칼데콧 아너 상을 여러 번 수상한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이다. 오래된 돌담 옆 헛간에 사는 들쥐 프레드릭. 다른 친구들은 겨울을 대비해 식량을 준비하느라 바쁜데 프레드릭은 다른 친구들처럼 양식을 모으지 않고 가을의 햇살과 온기와 찬란한 빛들을 모은다. 그리고 깊은 겨울이 되고 모아둔 양식도 떨어지자 추위와 배고픔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은 프레드릭 곁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햇살의 온기와 빛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배고픔을 잊고 모두 행복해하는 이야기다. 프레드릭은 시인이었다. 떠올리고 추억할 그리움이 많은 시인 말이다.


 오늘은 날씨가 다시 좋아졌다. 어제 불었던 찬 바람은 오간데 없고 깃발을 흔들던 그 움직임은 잔잔해졌다. 그리고 다시 부드러워진 공기들로 가을의 일요일이 채워졌다. 어제는 계획한 일정보다 당겨서 라이딩을 마쳤으니 오늘은 일정을 좀 더 늘여 더 먼 곳까지 다녀와야겠다. 아이들은 지금, 자전거 휠을 정비하고 있는 아빠 옆에 나란히 앉아 재잘거리고 있다.


 아름다운 날들이 이어지고, 그 속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이 소소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들이 켜켜이 쌓이면 나의 그리움 사전에 등재된다. 그리고 별일이 없는 심심한 날들에, 마음에 겨울이 찾아드는 날들에, 좀 더 게으름을 부리고 싶은 날들에 따뜻한 차와 함께 그리움 사전을 펼쳐본다. 그리고 차가 식을 때까지 오랫동안 그리움 안에서 행복할 수 있다. 기억할 것이 많고, 떠오를 것이 많은 그리움 부자들은 외롭지 않다.




자전거를 타며 만난 가을 잎새들에 감사한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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