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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May 19. 2021

맑았다가 흐렸다가 다시 맑음

봄이 시작되면 언제나 찾게 되는 유명산 자연휴양림

 봄날은 참 변덕스럽다. 따뜻한 날이 이어지다가도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거나, 청명한 날이 이어지다가도 갑자기 황사가 밀려오기도 한다. 햇살이 투명하게 빛나다가도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기도 하고 그러다 비를 뿌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봄에는 아침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일기예보를 놓치지 않고 듣는 편이다.


 비 예보가 있었던 봄날의 토요일. 오전에 아이들 악기 레슨이 끝나고 바로 유명산 자연휴양림으로 캠핑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오랜만의 캠핑이었기 때문에 전날 비 예보에 걱정을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투명한 햇살이 창가로 내리쬐고 있었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오늘 비가 안 오려나?” “비가 와도 잠깐 지나가고 말겠지”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누며 캠핑 장비를 챙겨 나왔다.


 아이들 레슨 받는 동안 일찍 문을 여는 카페에 들렀다. 커피를 사서 나가는데 역시 오전의 햇살이 좋다. 햇살 좋은 김에 우리는 테라스 자리에 앉아 와플을 나눠먹었다. 봄 햇살이 제법 뜨거워져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썼다. 하늘이며 나무며 지나가는 차들까지 봄햇살에 경쾌하게 빛났다.



 그렇게 아무래도 비는 오지 않겠다 싶었는데 유명산 자연휴양림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침과 사뭇 다른 날씨였다. 햇살은 구름 뒤로 숨은 지 오래고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더욱 굵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유명산에 도착하고 나니 다시 하늘이 개이기 시작했다. 맑았다가 비가 왔다가 다시 맑아지기까지 모두 한나절 동안의 일이었다.


 한차례 다녀간 비로 숲의 향기는 더욱 짙어져 있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며 나의 오랜 친구 유명산에게 안부를 건넸다. 유명산은 언제나 제 자리에서 계절을 보내며 그렇게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넉넉하게 우리를 맞아주고 있었다.


 추억이 많은 장소를 다시 찾으면 재미있었던 기억들이 툭툭 떠오른다. “여기에서는 연을 날렸었지. 그러고 보니 저기 숲 속 놀이터에서 추위도 잊고 놀았었잖아. 저기서 먹었던 수박 주스는 정말 맛있었는데.”아이들은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재잘거린다.


몇 해전 오토캠핑장으로 조성된 유명산 3야영장의 풍경

역시 봄날의 날씨는 예측이 어렵다. 텐트를 치고 나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후득후득 빗줄기는 점점 세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온도 점점 떨어졌다. 텐트를 칠 때까지만 해도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비 내리는 타프 아래 앉아있자니 선득선득해진다. 후드티를 더 껴입었다. 후둑후둑 내리는 빗줄기는 바람을 타고 타프 안으로 찾아들기까지 했다.


가솔린 버너 위에 히터캡을 올리면 간이 난로가 된다.

 잠시 빗줄기가 약해지길래 기온이 더 떨어지기 전에 이른 저녁을 먹었다. (마켓 컬리에서 차돌 묵은지 볶음밥을 사 갔는데 이런 날 캠핑장에서 휘리릭 해 먹기에 정말 간편하더군요.) 아이들은 밥을 먹고 나서 텐트 안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좀 더 앉아있기로 했다. 비 내리는 봄날의 숲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 되자 선득하던 날씨가 슬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점퍼를 더 껴입고는 우리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찻물을 끓이고 난 버너에 히터캡을 올려 작은 난로를 만들었다. 밥과 커피와 난로의 온기 덕분에 후둑후둑 내리는 빗소리는 점점 낭만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커다란 우산을 쓰고 숲 속 공터에 앉아서 빗소리를 들었다.


 해가 지자 아이들이 있는 텐트로 들어가니 전기장판이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그 덕에 몸이 노곤노곤해진다. 그렇게 텐트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모두 잠이 들었다. 최근에 아홉시에 잠들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주 오랜만에 일찍 잠들었다. 숲 속의 밤은 정말 어두웠고 후둑후둑 계속 내리는 빗소리는 마치 자장가 같아서였을까.

 


 잠결에 밤새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타프가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타프는 건재했고 하늘은 놀라울 정도로 어제와 달라져있었다. 잘하면 철수하기 전에 타프 위의 빗물을 다 말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맑은 날이 시작되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나무들. 그리고 따뜻한 햇살. 나는 아무래도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텐트에서 듣던 빗소리도 낭만적이다 싶었지만 역시 쾌청한 날씨의 상쾌함이란! 어제 내린 비로 바람은 다소 차가웠지만 이내 햇볕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타프와 텐트의 물기 한 방울까지 보송하게 말랐다. 맑았다가 흐리고, 비가 왔다가 맑아지는 것이 어디 봄날뿐일까. 행복했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행복해지듯 사람의 마음도 다르지 않겠지.


 변덕스러운 봄 날씨 덕분에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잘 먹고, 잘 자고, 잘 숨 쉬고 그렇게 또 한 번의 위로를 받았다. 언제나 찾아와도 좋지만 이런 봄날엔 그 위로가 더욱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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