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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Jan 31. 2021

여름 캠핑

마음의 물기가 사라진다


 그 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었다. 한동안은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려고 창을 열어두기도 했다. 아름다운 물방울들이 창문에 매달린 걸 구경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렇게 여러 날을 비를 바라보고 지냈더니 비를 뿌리는 구름 뒤에 빛나고 있을 해가 너무나 그리워졌다. 보이지 않는 물방울들이 창을 투과해서 온 집을 둥둥 떠돌아다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둥둥 떠다니던 물방울은 심지어 내 어깨에도 앉았다가 마음까지 적실 작정을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토끼 인형이 물방울을 먹어 1.2배 커진 것 같은 것도 그런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한번 쫙 쫘주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다 집에 머무는 중에 며칠간 날이 반짝 개였던 적이 있었다. 그런 날은 창문을 열고 해에 잘 마른 바람을 들여보내 집 구석 구석 돌게 한다. 볕이 잘 드는 곳에 화분을 꺼내 두고 초록의 생명이 실컷 숨 쉬는 걸 봐야만 한다. 잘 익은 수박을 아이들에게 또각또각 잘라주고는 햇살이 비치는 곳에 시선을 놓아둔다. 그렇게 오랜만에 해가 드나들면 집안의 물방울들이 조금씩 마르고 아이들 속눈썹에 묻어있던 물기도, 나의 어깨 위로 올라탔던 물의 자취도 마른다. 그러고 나면 작은 바람이 생긴다. 해를 좀 더 오래 잡아두고 싶다는 바람. 잘 마른 바람이 영혼을 드나드게 하고 싶다는 바람. 마음을 마저 말리고 싶다는 바람이.


 그러기에 딱 좋은 장소가 있다. 반짝이는 모래사장에 앉아 햇빛을 모으기 좋은 곳, 속 깊은 친구처럼 적당히 외로운 소나무들이 둘러싸인 곳, 오래된 솔잎들이 카펫처럼 촘촘하게 깔린 곳, 바다와 육지의 바람이 하루종이 돌아나가는 곳. 그곳이라면 마음에 남아있는 마지막 물기까지 잘 말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으로 반짝 떠났다.


여름의 도로

 우중에 개인 여름은 상큼하다. 달콤한 풀향기가 난다. 옥수수 잎사귀들은 며칠 새 짙어졌을 것이고, 파란 하늘에는 시원한 바람이 구름을 밀고 다닌다. 마음을 말리고 여름 해를 곁에 두러 가는 길은 어쩐지 자유롭다. 반짝 떠났다가 반짝 돌아가야 하지만 고마운 날씨 덕에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자유롭게 느껴진다.


 

 

여름의 해변 캠핑

  여름 해변의 솔숲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소나무에서는 참 좋은 향기가 난다. 그 향기만으로도 마음에 묻어있던 물기가 마르는 것 같다. 햇빛을 잘 받은 바다에서는 먼 곳의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을 깊이 들이마쉬어 본다. 그 바람에 역시 마음이 마르는 것 같다. 우리 모두가 바람과 햇살에 마음을 널어말리기로 한다. 그리곤 바다가 잘 보이는 이 곳에 여장을 풀고 하루 묵어 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해가 지는 해변

 

 해가 지고 나서도 내 안의 해는 지지 않았다. 하루 동안 해를 곁에 두었기 때문인지 마음에 햇살이 몇 조각 남아 마음을 밝혀주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름밤이 찾아든다. 여름밤은 낮만큼이나 상큼하다. 밤에 부는 바람에는 어둠 속에 희망이 꿈틀대듯 좀 더 많은 설렘과 기대가 들어있다. 파도 소리에 실린 바람이 텐트 안을 돌아 나가며 소나무 가지를 흔들고 간다. 나는 데크에 누워 흔들리는 소나무 가지를 보다가 별똥별을 만났다. 태양계를 떠돌던 작은 티끌이 강렬하게 빛을 내며 사라졌다. 빛의 흔적은 이내 사라졌지만 황홀한 순간이었다.





소나무숲과 텐트


  캠핑장에서는 일찍 눈이 떠진다. 그리고 내가 일어나면 꼬마 아들은 꼭 따라서 일어난다. 눈 비비며 일어난 아들과 둘이서 새벽 산책을 한다. 부지런한 바람은 이미 산책을 마치고 나가는 중이었다. 부지런한 해도 여름에는 일찍 모습을 드러내 해변을, 소나무숲을 비춘다. 그 빛을 따라, 그 바람을 따라서 새벽 산책을 하고 나면 문득 깨닫는다. 마음에 남아있던 물방울들은 이미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햇살과 자유로운 바람이 그 자리를 채웠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밤새 소나무 향기를 맡은 텐트도 물기를 털어내고 보송보송 잘 말랐다는 것을.


 언제나 다시 마음에 물방울이 찰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곳의 반짝이는 햇살과 바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보송보송 마르겠지. 꼭 그럴 것만 같다. 우리는 생각만으로도 어디든지 떠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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