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유독 추운 겨울날엔 근사한 봄의 바다가 그립습니다.
차가운 겨울을 지나왔기 때문일까. 봄의 바다는 슬슬 불어오는 훈풍에 싸여 어떤 기대를 가지게 한다. 그것은 기분 좋은 예감이다. 봄의 전령이 앉은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울지.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그 바다를 보고 위로를 받게 될지. 또 반짝이는 여름이 오면 얼마나 많은 행복이 이곳을 지나갈지. 그런 기대들이 몽글몽글 봄의 바다 위로 번진다. 그래서 봄의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참 근사하다. 그곳이 장호 해변이라면 더욱.
삼척 장호 해변은 물색이 맑고 투명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스노클링 등 해상 레포츠를 즐기러 모여든다. 우리도 종종 여름에 검봉산 자연휴양림에 머물면서 장호해변으로 가 여름바다를 즐기곤 했다. 그 물빛이 너무 아름다워서였을 것이다. 해변에만 나갔다 하면 몇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다를 담았으니. 한 번은 맨손으로 성게를 잡아 꼬마들의 환성을 듣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 해변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캠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 그러던 중에 장호 해변에 국민여가 캠핑장을 조성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장호 해변에 대한 나의 애정 때문인지 캠핑장이 완공되면 바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몇 년 새 인기 캠핑장이 되어 예약이 무척 힘들었다. 그러다 몇 해 전 이른 봄날. 운 좋게 2박을 연달아 예약하는데 성공했다.
생각으로만 막연히 떠올리는 것들이 현실에서 더 멋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장호 해변이 딱 그러했다. 봄의 햇살이 비쳐 반짝거리는 바다는 생각보다 무척 아름다웠다. 고요하고 잔잔한 파도와 겨울 동안 단단히 다져진 모래,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물결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 봄의 바다는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우리가 예약한 곳은 해변 앞쪽의 파쇄석 자리였다. 파쇄석 자리 뒤편에는 카라반들이 층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바다를 나눠 볼 수 있도록 계단식으로 자리한 캠핑장은 바닷가 언덕에 자리한 소박한 마을이었다. 주말을 앞두고 캠퍼들이 하나둘씩 모여 마을은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도 자박자박 돌 밟는 상쾌한 소리를 들으며, 바다를 돌아 나오는 훈풍을 맞아가며 이틀 묵어갈 집을 지었다. 그리고는 봄의 햇살을 받으며 빛나는 바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틑날은 햇살이 더욱 좋아서 해변으로 가서 오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해변에 매트를 깔고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조개껍질을 줍기도 하고, 누워 하늘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 잔잔한 바닷물에 손을 담갔다가 물이 꽤 차가워 놀라기도 하였다. 그리곤 부지런히 이른 산책을 마친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보기도 했다. 오후에는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삼척해상케이블카를 타러 갔더니 주말 오후라 그런지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장호리와 용화리를 잇는 케이블카의 스릴 있는 바다 관람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리는 텐트와 해변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여유롭게 따뜻한 봄바다를 즐겼던 시간들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특히 요즘처럼 차가운 날씨엔 훈풍에 빛나던 봄의 바다가 부쩍 떠오른다. 맑고 눈부시던, 잔잔하고 행복한 기대들로 벅차던 봄의 바다. 그 바다를 떠올리면 이렇게 추운 겨울도 때가 되면 지나가고, 결국은 포근한 봄이 다시 올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이러저러한 생각들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