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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Sep 13. 2020

속리산 사내리의 밤

등산에서 캠핑으로. 좋아하는 것을 놓지 말고 따라가다 보면.

 모든 것에는 처음이 있다. 나의 캠핑 생활도 마찬가지. 첫 캠핑을 떠난 날 밤에 처음 붙였던 장작이 아직도 내 가슴에서 토닥이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다. 첫 캠핑을 가면서 꼭 모닥불을 피워야 한다는 로망으로 구입했던 그 화로대는 지금 없지만, 그때의 불빛과 온기는 아직 꺼지지 않고 있다.


 첫 캠핑 장소를 선택하기 위해 전국의 캠핑 지도를 피고 심각하게 고민했었던 날들이 있었다. 청량한 숲의 향기가 있는 곳이면 좋겠고, 우리가 좋아하던 산자락이면 더 좋겠고. 꼬마 아이가 있으니 편의시설도 좀 괜찮으면 했고. 뭐 그런저런 조건들에 밑줄 쳐가며 결정한 곳은 바로 속리산 사내리 야영장이었다. 첫 캠핑을 위해 준비했던 장비들을 차에 싣고, 갓 돌이 지난 딸을 안고서 아주 오래된 고목으로 둘러싸인 속리산으로 떠났다. 사실, 산에 너무 가고 싶었던 것이다.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우리 부부는 워낙 산을 좋아해서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기 전 3년 동안 부지런히 주말이면 산에 올랐다. 푸르스름하던 저녁,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에서 가져간 식량을 살뜰히 나눠먹고, 세수를 하고, 산이 어둠에 잠기는 것을 바라보았던 그 밤이 시작이었다. 산을 좋아하게 된 것이. 대피소에서 얇은 침낭을 피고 누웠는데 바닥이 어찌나 뜨끈뜨근하던지, 산을 오르는 동안의 피로가 싹 사라지는 개운함을 느끼며 아침을 맞고, 향적봉에 올라가 일출을 보았던 그때 말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한 등산의 추억을 안고 내려왔지만 그때 우리는 향적봉을 오르면서 아무런 등산 장비 하나 없이 산을 올라 꽤 고생을 했다. 경험으로부터 오는 것들은 하나하나가 전환점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로 등산용품점에 가서는 두 손 가득 등산 장비를 구입해서 주말마다 산을 올랐다. 집 근처에 있는 산부터 제법 먼 곳까지.


 한 번은 겨울 소백산을 오르기 위해 전날 단양에 미리 내려가 새벽에 산을 오른 적도 있다. 등산화에 아이젠을 끼우고 스패츠와, 귀마개와 모자에 아주 단단히 무장을 하고서 겨울 산을 오르며 추위와 어둠과 싸우며 한 걸음씩 나갔던 그때의 등산도 잊지 못한다. 어서 해야 떠라, 해야 떠라 하면서 조금씩 환해지던 햇살에 감사했던 그날의 등산. 연화봉을 오르며 눈밭에서 우리가 함께 나눠먹었던 아침과 비로봉으로 넘어가던 눈 덮인 설산의 능선들의 모습은 늘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다. 힘들었지만 산의 아름다움이 시야를 채우고, 마음을 채웠기에 산을 꾸준히 다녔고, 산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는 종종 속리산에서 어머니와 같은 느낌을 자주 받았다. 문장대 다다른 곳에서는 꽤나 가팔라지는 구간도 있지만 오르는 내내 크게 위험한 곳 없이 아름다운 산길이 이어져 온화한 어머니의 눈길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문장대에 올라서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나 유하고 광대해서 그 넓은 광경에 절로 겸손해지는 것이었다. 그런 속리산에 반해 일 년에 한 번쯤은 속리산을 오르자며 남편과 나는 서로 약속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등산은 먼 일이 되었다. 작은 생명이 조금씩 자라는 그 모든 시간들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기에. 그러다 그 작은 아이가 조금씩 걷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다시 산을 찾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산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산 아래서 캠핑을 하기로 했다. 그게 하나의 전환점이라면 전환점일까. 등산에서 캠핑으로. 아웃도어 라이프 중심이 이동하는 순간이었다.


 첫 캠핑으로 속리산 사내리 야영장을 선택하게 된 것도 등산을 좋아하던 우리의 성향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 돌쟁이 아이와 함께라 등산은 엄두를 내기 힘들었지만 좋아하는 속리산 아래로 텐트를 가지고 가서 산을 느끼고 오는 것은 가능했다. 속리산 아래 흐르던 맑은 계곡과, 오래된 고목들이 서있던 산책길, 그리고 멀리서라도 보이던 속리산의 큰 그림자들만 보아도 마음이 참 너그러워지는 것이었다.


 첫 캠핑부터 우리는 비를 만났다.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렇게 큰지, 비가 그치고 나서 피우는 장작불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지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여름날이었지만 비가 그친 후의 산은 선득했고, 옆지기가 구해온 장작이(그때는 사내리 야영장에 장작을 파는 곳이 없어서 남편이 산아래 장작구이집에서 장작을 사 왔다고 합니다. 한참만에 장작을 구해서 돌아왔죠.) 타오르는 소리에 우리는 아무런 말 없이도 아주 편안했다. 속리산을 오르기만 했지 그 품 안에서 며칠 머무르며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던 순간들의 기분과, 숲의 향기가 지금도 고스란히 떠오르는 건 그때 피웠던, 아직까지 내 마음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 때문인듯하다. 지금은 그때로부터 십 년이 더 지났지만 아직까지 아이들이 어려서인지 캠핑이 주 활동이고, 등산은 캠핑장에서 소소하게 하는 야외 활동일 뿐이다. 언젠가 아이들이 좀 더 큰다면 다 함께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올라 대피소에서 따뜻한 하룻밤을 지내고 능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함께 볼 날이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그것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때, 그와 공통분모를 가진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게 새로운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좋아하는 것과 이어진 길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그것들이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나 꿈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그 곁으로 가는 새로운 문들을 계속 발견하게 될 거라 믿는다.



첫 캠핑, 속리산 사내리 야영장에서 처음 피웠던 모닥불. 아직도 내 마음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온기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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