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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Nov 29. 2020

찬바람 불었던 겨울 당일치기 캠핑

입동, 겨울의 문턱에서 캠핑 나들이

 겨울의 시작. 24절기 중 열아홉째인 입동. 절기상으로는 이날부터 겨울이 시작된다고 본다. 양력으로는 보통 11월 7일이나 8일 무렵이다. 이 무렵이면 산야에 나뭇잎이 떨어지고 풀들이 마르며, 동면을 하는 동물들은 땅속에 굴을 파고 숨는다. 입동이 지나면 땅이 얼기 시작하고 본격적인 겨울이 온다. 나무들도 가진 잎들을 떨어내고 에너지를 최소화하며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사람들도 서서히 겨울을 날 준비를 한다. 입동이 지나고 나서는 눈이 갑자기 내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날들이 시작된다.


 우리는 입동에 겨울맞이 캠핑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캠핑장을 예약하고 동계 장비를 점검하면 딱이지 싶었다. 그런데 북서풍을 타고 온 미세먼지에 황사까지 겹친 입동을 맞게 되었다. 이런 날 밖에서 캠핑은 무리라고 보고 1박은 취소하고 입동 다음날, 당일 캠핑을 다녀오기로 했다. 다음날은 차가운 북서풍에 미세먼지는 멀리 내려간다고 했으니 캠핑 나들이로 날씨가 괜찮을 듯싶었다. 다소 포근한 입동이었으니 다음날도 괜찮겠지 하며.


 절기는 참 신기하다. 한창 덥다가도 입추나, 처서가 지나면 서늘한 바람이 불고, 한창 춥다가도 청명, 곡우가 지나면 훈훈한 바람이 분다. 긴 옷이 좋다가도 입하와 소만이 지나면 반팔 옷이 익숙해지고 신록에 눈이 부시다. 입동도 마찬가지. 미세먼지가 많았지만 포근한 입동이어서 별로 안 춥네 했더니만 입동이 지나가자마자 기온이 5도나 떨어지며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 집에서 보는 밖은 미세먼지가 걷혀 파란 하늘에 햇빛이 따스하기만 했는데, 막상 캠핑장에 도착하니 산에서 불어오는 겨울의 찬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거기다 산 아래 데크라 금세 산 그림자가 내려왔다.


 

 일요일 오후의 캠핑장은 언제나 한산하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볼은 시렸지만 한산한 캠핑장의 여유는 참 좋다. 모두가 떠나고, 들리는 건 찬 바람 소리와 빈 가지 흔들리는 소리, 그리고 낙엽 뒹구는 소리뿐이다. 아이들은 캠핑장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따라다니느라 추위도 잊고 신이 났고, 나는 겨울을 맞은 숲의 향기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금방 쉘터를 치고 불을 피울 준비를 했다. 원래 점심을 먹은 후에 불멍 타임을 즐기려 했지만 찬 바람과 그늘을 이기는 방법은 일단 불을 피우는 것뿐이다. 그런데 장작에 습기가 많아서였는지 불 피우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잘 마른 장작은 좋은 소리를 내며 타닥타닥 불이 잘 붙는데 반해 습기가 많은 장작은 연기만 많이 나면서 쉽사리 불이 붙지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불 앞을 지킨 덕에 장작에 불이 서서히 붙기 시작했다. 바람은 차갑지만 불 앞은 따뜻하다. 불을 피웠으니 이제 점심을 먹을 차례다. 이날 점심은 주꾸미 삼겹살 볶음. 옆지기가 낚싯배를 타고 가서 잡아온 주꾸미를 야심차게 준비했기 때문에 그 맛을 모두가 기대하고 있었다. 수제 소스에 잘 버무려진 주꾸미와 삼겹살이 불판에서 지글지글 익어가고. 보드라운 주꾸미와 고소한 삼겹살 맛에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쉘터 안에서 함께 밥까지 볶아서 맛있게 먹고 나니 추위도 좀 가신 것 같았다.


  점심까지 먹고 나니 캠핑이 더 여유로워진다. 남은 건 불멍을 즐기며 커피를 마시는 것뿐. 차가운 캠핑장에서 뜨거운 불곁을 지키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일은 참 즐겁다. 모두가 오랜만의 불멍이라 그런지 장작이 금세 사그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불 앞을 지켰다. 매점에서 사 온 장작 한 상자가 바닥을 보이자 아이들은 뒷산으로 올라가서 솔방울이며 잔가지들을 주워왔다. 아이들이 주워온 것들을 보니 잣이 그대로 박힌 잣방울도 여러 개였다. 장작불 안에서 타닥타닥 거리며 잣들이 타들어가니 진한 향이 올라왔다. 엄마도 같이 가서 주워오자며 내 손을 끌고 올라가는 아들 덕분에 나도 함께 다람쥐처럼 잣방울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잣방울을 아이들은 잘도 줍는다. 나와는 반대로 아이들 손에는 잣방울과 솔방울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마지막 남은 불꽃마저 사그라지고, 산 그림자가 더 짙어지자 우리도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일 캠핑이라 간단히 세팅한 터라 금방 자리를 정리하고 캠핑장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먼 산 너머로 어둑어둑 해가 지기 시작했다. 늘 먼 곳으로 캠핑을 다니다가 30분 거리의 가까운 곳으로 당일 캠핑을 다녀오니 그것 또한 편안하고 좋았다. 날이 춥지 않았다면 캠핑장에서 저녁까지 먹고 왔겠지만 집에서 따뜻한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돌아보는 것도 꽤 매력적이었다.


 이제 입동도 지나고 진짜 겨울이 왔다. 곧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도 올 테고,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도 올 테고, 겨울을 매듭짓는다는 대한도 올 테지. 그렇게 겨울의 절기들이 지나가면 입춘이 올 테지. 얼었던 땅이 녹기 시작하는 우수도 지나갈 테고, 겨울잠을 자러 들어갔던 동물들도 경칩을 맞아 깨어날 것이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겠지. 모두가 찬 겨울을 잘 보낼 비법들 하나씩 가지고 겨울을 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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