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숲 May 18. 2020

솔숲에는 파도 소리만이, 강릉 사천해변

해변에 텐트를 치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일이 그렇게 좋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던 날이었다. 계절은 봄. 퀸의 노래를 들으며 영동고속도로를 달렸다. 나의 목적지는 강릉 사천해변이었다. 사천해변은 연곡해변과 경포대 사이에 있는 한적하고 조용한 해변이다.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며 소소하게 캠핑을 하기 좋아서인지 알음알음 캠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이다. 종종 바다로 창을 낸 카라밴 등이 해변 주차장에 한가로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자창에 차를 대고 장비를 들고서 솔숲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주차장 가까운 곳은 이미 일찍 온 캠퍼들의 텐트로 알록달록했다. 알록달록 텐트들을 지나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이내 한적하다. 이곳이야 어느 곳에 텐트를 치더라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지만 좀 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아본다. 나는 주황색 산악용 텐트를 치고 안락의자에 앉아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기로 했다. 온통 파도 소리만이 들려왔다.


 해가 슬슬 지고 나자 강릉 중앙시장으로 가서 회를 떠 왔다.(요즘엔 꼬막무침에 반해서 꼬막무침과 수제 맥주를 사러 갑니다. 청양고추와 심심한 양념장과 어우러진 꼬막은 너무 맛있더군요) 바다를 보며 오징어나 광어회를 먹으면 한 입 가득 바다향이 난다. 그렇게 먹고 나니 이른 봄의 차가운 밤공기에 슬쩍 한기가 느껴졌다. 그럴 땐 따뜻한 텐트로 들어가 몸을 녹여도 되지만, 이곳은 커피가 유명한 강릉 아니던가. 따뜻한 드립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마침 테라로사 사천점이 근처에 있어 오가며 눈여겨보았던 터였다. 두 꼬마들도 할머니 집에 맡기고 온 터라 나와 옆지기는 테라로사까지 걸어가서 따뜻한 커피의 온기를 마시고 돌아왔다.


텐트로 돌아오니 이미 캠핑장엔 진한 밤이 내려있었다. 텐트의 불빛이 반짝거리며 밤바다를 비추고, 소나무들의 검은 실루엣이 묘하게 안정감을 주었다. 해풍을 맞아 이렇게 저렇게 휘면서도 연신 푸르른 소나무. 매일 파도 소리에 귀를 씻고 해풍에 단단해진 그들이었다. 때로는 강한 비바람과 파도에 넋이 나갈 정도로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눈부시게 맑은 날에는 잔잔한 파도 소리에 눈을 감고 달콤한 낮잠을 즐기기도 하였을 것이다.


 시련과 기쁨으로 단련된 소나무들에게서는 아주 기분 좋은 솔향이 난다. 그들 아래 낮은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누워 잠을 청하는 동안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잠이 들 때까지 귓가에서 울렸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 소리와 파도 소리가 섞여 귓바퀴까지 밀려오더라. 검은 소나무 사이에서 밤바다가 넘실거리며 달빛에 빛나는 것을 보고 잠이 드는 일. 나를 일렁이게 한다.


 날이 좋으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파란 하늘을 비추는 맑은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이날이 그런 날이었다. 해변에 앉아 아침 햇살을 받으며 부드러운 해풍이 전해오는 사연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먼 데서 배가 지나가면 가볍게 손도 흔들어봤다. 그러곤 몽글몽글 끓인 하얀 초당 순두부를 먹으러 갔다.(캠핑 와서 꼭 음식을 하지 않고 맛집을 다니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일요일 오전에는 초당 순두부 골목에 관광객들이 꽤나 붐빈다. 늘 느끼지만 별다른 양념 없이도 초당 순두부는 참 맛있다.


 뜨끈한 순두부로 속을 채우고 이번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텐트로 돌아왔다. 그러면 사천해변은 세상 가장 멋진 바다 뷰를 가진 카페가 된다. 나는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참 좋아한다. 밀려오는 파도는 매번 다르고, 햇빛에 반짝거리며 일렁이는 물결 또한 매 순간이 새롭다. 문득 매 순간 새로운 것은 신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지치는 일이기도 하다 싶었다. 나는 늘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 위를 올라타고 파도처럼 흔들리다 조금씩 지쳤던 것일지도 모른다.(그해 겨울에 후두염을 한 달간 앓았었답니다) 그래도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은 감사한 일이겠지.


 주변에서 한 두 팀씩 텐트를 정리하는 것이 보였다. 우리도 슬슬 정리해야겠지. 파도 소리로 귀를 씻어내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으니 갈 때가 되었다. 폴대를 빼고 텐트에 남은 바람을 눌러 돌돌 말아 정리한다. 우리가 머물렀던 곳이 이렇게 작게 줄어든다니 텐트를 걷을 때면 자주 내 공간의 크기를 생각 한다.


그리고 차가 막히는 시간을 피해 오전 중에 영동고속도로에 다시 몸을 싣는다. 신기하게도 강릉에서의 캠핑은 하루를 머물러도 몸과 마음이 쉬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아주 자주 강릉, 사천해변으로 휙 떠나고 싶다. 별다른 장비 없이 작은 텐트 하나만 가지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에서의 사적인 캠핑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