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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Dec 26. 2019

제주에서의 사적인 캠핑 기록

- 캠핑으로 만난 제주는 바람과 달과 파도 소리를 남겼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여름, 친구들과 함께 막 돌이 지났던 첫째 아이를 데리고 제주에 간 적이 있다. 우리는 공항에서 렌터카를 인수하자마자 해안도로를 달리며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나의 시선을 끈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협재 해변에 머무르던 색색의 텐트들이었다. 그 텐트들은 푸른 잔디 위에서 제주의 바람을 맞고 있었다. 에메랄드 바다를 훑고 지나온 제주의 바람이 작고 낮은 텐트들 주변에 머물면서 텐트와 타프를 흔들고 있었다. 그들은 꼭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무방비로 바람에 흔들리던 텐트들이 돌쟁이 아기를 키우던 나에게는 몹시도 자유롭게 보였다.

흔들리는 것도, 이 섬의 자연을 날것으로 맞는 것도 모두 다 나의 의지야.

색색의 텐트들이 이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 후로 해변의 텐트들은 종종 생각이 났고 그때마다 마음엔 시원하고 푸른 제주의 바람이 부는듯했다. 그렇게 제주의 바람이 마음을 드나들던 어느 해 6월, 우리는 제주도로 갔다. 캠핑장비를 차에 싣고 두 아이들과 함께 그렇게 제주도로 갔다. 그것이 제주에서의 첫 캠핑이었다.

장흥 노력항에서 오렌지호를 타면 한 시간 삼십 분만에 성산포항에 도착한다. 오후 첫 배를 타기 위해 우리는 새벽에 집을 나섰다. 여수나 목포에서도 제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지만 장흥에서 타면 배에서 머무는 시간이 최소한이라 장흥으로 간 것이다. 한 시간 반이라는 짧은 뱃시간을 선택했지만 막 걸음마를 뗀 둘째 아이가 여기저기를 다니려는 통에 그 호기심을 채워주느라 배안의 시간이 몹시도 길게 여겨졌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제주 성산포항에 도착해보니 오후 4시쯤 되어 있었다.

드디어 제주 도착, 먼 길을 돌아가도 달콤한 길이 있어.

긴 햇살을 받으며 일렁이는 바다와 나란히 달리는데 마음이 편안해지던 기억이 난다. 먼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야영지로 정한 곳은 김녕 해변 캠핑장. 하얀 모래와 코발트빛 바다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해변의 오른편 푸른 잔디 위로 캠핑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김녕 해변에서 머물렀던 삼일 동안, 제주의 바람은 내 마음을 지나 텐트 안과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뜨거웠던 햇살 덕에 꼬마들이 해수욕도 즐길 수 있었다. 밤에는 만조가 되어 바다와 바위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김녕에서 제주시까지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제주시에 있는 동문시장에서 필요한 장을 봤다. 시장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시장에서는 구경도 하면서 먹을거리도 사면서 어슬렁어슬렁 다니게 된다. 우리는 제주 흑돼지 삼겹살을 먹을 요량으로 삼겹살 한 근 반을 사 왔는데 이날 먹었던 삼겹살은 지금까지도 손에 꼽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그 뒤로도 제주 여행을 갈 때마다 그때의 그 삼겹살 맛을 느끼고 싶어 동문 시장을 찾는데 그날처럼 맛있었던 고기 맛은 다시 느끼기 어려웠다. 아마도 상큼한 초여름의 날씨와 푸른 제주의 바람, 조잘대던 꼬마들의 목소리, 바다를 지나다니던 배들의 집어등 불빛, 그리고 첫 제주 캠핑의 설렘 등이 섞여서 그 고기 맛이 더 맛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김녕 해변 캠핑장에서의 시간이 지나갔다. 우리는 삼 일간의 일정이 더 남아있었기에 남은 일정을 우도에서 보내기로 했다. 이때만 해도 우도 배편에 차량을 선적할 수가 있었다. 지금은 차량 금지이지만.

아무튼 우리는 우도에 도착하자마자 비양도로 갔다. 비양도는 우도 동쪽에 자리한 작은 언덕이 있는 섬으로 하늘과 바다와 언덕이 조화를 잘 이룬 곳이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6월 초, 평일이었기 때문에 캠퍼라고는 우리뿐이었다. 넓은 공간에 우리뿐이었던 곳. 그리고 바람이 정말 많이 불었던 곳.


사방으로 보이던 바다와 끊임없이 부딪쳐오던 하얀 포말, 넓은 풀들 사이에 야생화들, 섬을 돌아나가는 푸른 바람 소리, 밤이면 이 세상에 우리만 있는 것 같이 적막했던 곳. 어느 곳보다도 커다란 달이 뜨던 곳. 저녁을 먹는데 누군가 등불을 켜놓았나 착각을 할 정도로 커다란 달이 바다 위에서 떠오르고 있었고 그 순간의 신비로웠던 느낌은 자주 꺼내보는 기억이 되었다. 아이들은 비양도 곳곳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찾느라 분주했다. 한낮에 태양이 뜨거울 땐 하고수동 해변 쪽에서 더위도 식히고 점심도 사 먹었다. 그러곤 어느 민박집 샤워장을 빌려 아이들과 싹 씻고 나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민박집 강아지의 재롱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다. 이곳의 기억은 이런 단편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칠 년이 지난 지금 우리 부부는 아직도 그때의 제주 캠핑을 이야기한다. 캠핑을 하다 보면 서로 대화하는 시간이 많은데 단골 대화 메뉴가 아이들 이야기 또는 훈장 같았던 예전 캠핑 이야기들인 것이다. 캠핑을 하면서 지난날의 캠핑을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비양도에서 나흘째 되던 아침, 이날은 밤새 바람이 얼마나 많이 불었던지 텐트가 바람을 먹어 팽팽해져 있었다. 단단하게 박아두었던 팩은 팽창한 것처럼 끝이 살짝 들려있었다. 제주 바람은 역시 힘이 셌다. 후드득 소리를 내며 바람은 우리 텐트의 안과 밖을 마구 흔들었다. 그 때문에 일찍 잠에서 깨어 뒤척이며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를 들었다. 얼마나 거센 바람인지 직접 나와보니 주변은 잔잔하고 낮은 풀들과 꽃들만이 이리저리 바람결을 헤맬 뿐이었다. 그리고 햇빛이 서서히 비치고 있었다. 텐트 안에서는 막무가내 거센 바람 같았는데 나와서 마주하고 나니 사소한 바람이었다. 마지막으로 텐트 사진을 찍은 후에 일찌감치 텐트를 걷었다. 일찍 짐을 정리해야 성산포항에서 오전 배를 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방 바다에 둘러싸였지만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던 제주도에서의 첫 캠핑. 행복한 순간은 단편적 이미지로 남아 계속 떠오르고 그것은 그리움을 만들어냈다. 그 캠핑이 그리워 재작년에 다시 제주로 캠핑을 갔다.

하지만 캠핑 장비를 싣고 간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때는 5박의 일정 중에서 하루만 캠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의 캠핑은 적당한 때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놓쳤던 것이다. 특히 더위는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놓쳤다. 첫 제주의 캠핑은 6월 초여서 텐트 안에 선선한 바람이 드나들었다면 이 때는 가장 덥다는 8월 초였다. 그래서 텐트 안이 너무 더웠기 때문에 남은 일정은 서귀포와 성산에서 숙소를 잡고 지냈다.


야심차게 떠났던 두 번째 제주 캠핑은 아쉽게 하루로 그쳤지만, 제주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짧은 캠핑에서도 며칠간 나눠먹을 이야기가 생겼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늘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세 번째 제주 캠핑을 계획하고 있다. 또다시 내 마음에 푸른 제주의 바람이 드나들 때 우연히 시간이 맞으면 휘리릭 제주로 가게 되겠지. 야영지는 어디로 하면 좋을지, 장비는 무엇을 가져갈지 미리 이리저리 생각도 해본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몇 번을 그려봐야 시간이 될 때, 마음이 맞을 때 그렇게 홀연히 제주도로 떠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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