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숲 Dec 07. 2019

캠핑의 온도

- 책방과 사우나가 있어 행동반경이 꽤 넓어졌습니다.

캠핑은 온도에 민감하다. 야외에서 밤을 보내고 밥을 지어먹어야 하니 그날의 날씨가 어떤지 살피는 것에 늘 신경 쓸 수밖에. 비가 자주 오지 않고 두꺼운 옷을 입지 않아도 한없이 가벼울 수 있는 봄의 온도, 텐트 안이 점점 더워져 계곡으로 나가야만 하는 여름의 온도, 청명한 하늘 아래 단풍이 곱게 깔리는 가을의 온도, 그리고 난로 위, 주전자 물 끓이는 소리가 정다운 겨울의 온도.


특히 겨울은 유난히 온도에 민감하다. 텐트 안과 밖의 온도차에 따라 행동반경이 좁아지거나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청태산 휴양림으로 동계 캠핑을 간 적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통 하얀 눈이 내려있었다. 그런데 온도는 전날보다 5도 이상 올라서 생각보다 포근했다. 그 덕에 아이들은 밥 먹을 때만 빼곤 종일 눈썰매를 타며 신나게 밖에서 놀았었다. 반면에 용화산으로 캠핑 갔을 때는 낮에도 영하로 기온이 떨어져 한 이십 분쯤 눈썰매를 타다 바로 텐트 안으로 들어갔었다. 텐트 안에서 텐트가 데워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보드 게임을 하거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금방 해가 지더라. 겨울 산에서 그렇게 온도에 기대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아무튼 이날도 밤에 영하 16도까지 떨어지고 낮에도 영하권인 몹시 추운 날이었다. 캠핑장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해가 진 후였다. 언제나 느끼지만 텐트를 칠 때가 가장 춥다. 불씨 하나 없는 곳을 따뜻한 곳으로 만들어야 하니 그 시작이 가장 추울 수밖에. 그라운드 매트 한 장 깔고 그 위에 텐트를 올린 후에 신발을 벗고 텐트 안으로 처음 들어가면 양말을 두세 겹 신어도 발이 너무 시린 것이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은 텐트 안 어디에선가 꼭 얼어붙어 있을 것만 같다. 어서 전기를 연결하여 전기 매트를 켜려고 했는데 릴선을 연결하고 코드를 꽂아도 전기 연결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사장님께 이야기하니 전기를 손 봐야 할 것 같다면서 사우나에서 좀 기다려 달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텐트를 대충 치고 사우나에 들어갔다. 사우나 밖의 노천탕에서는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영하의 날씨에 적당히 데워진 사우나 안에서 아이들은 반팔에 반바지만 입고서 더워지면 밖에서 열을 식히곤 했다. 캠핑장 사장님은 미안하다며 삶은 달걀과 우유와 간식까지 넣어주셨다. 간식을 먹으며 사우나 안의 책들을 읽다 보니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지금 행복하게 자라나고 있나요?

가끔 행복에서 멀어질 것 같을 때 이 문장을 간직하고 있다가 질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우리는 행복하고 싶고 행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우나에서 나오고 나니 겨울 하늘의 별들은 더 반짝였고 텐트 안은 훈훈하게 데워져 있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아침밥을 지어먹은 후 우리는 책방으로 갔다. 사우나 맞은편에 느린 책방이 있었는데 전날에는 간판에 불이 꺼져 있었기 때문에 다음날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책방 안에는 오래된 팬히터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와 책방 안의 온도를 훈훈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고 오래된 아이팟에서는 조용한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저마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차지하고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텐트로 책을 빌려갈 수도 있어서 나오는 길에는 책도 몇 권 대여해갔다.


영하의 날씨임에도 사우나와 책방이 있어서 우리의 행동반경이 넓어졌었던 캠핑. 텐트에서 책방까지 걸어가는 동안 아이들의 볼에 얼음이 서걱거렸다가도 책방 안에서는 적당한 온도가 되었고, 산책하며 머리카락에 끼어있던 서리들은 사우나 안에서 흔적 없이 녹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침낭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다 눈을 떠보니 마른 나뭇가지들과 햇살이 텐트 위에서 맑은 겨울 아침을 비추고 있었다.

밖의 온도는 꽤 차갑지만 짐을 싸기엔 괜찮은 온도야.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겨울 캠핑은 극명한 온도 차이가 만들어내는 경험들로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제법 차갑고 제법 뜨거웠던 캠핑의 온도. 그리고 소박하고 조용했던 밤들이 일상을 살다 보면 불쑥 떠오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