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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Jun 20. 2021

해변의 시간

바다 캠핑이 주는 즐거움. 고성 백도 오토캠핑

 

 바다가 몹시 그리운 날이 있다. 파도와 모래가 속닥이는 정겨운 소리도 그립고 수평선 너머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구름의 모양도 그립고 특유의 설렘이 묻어나는 짜고 달콤한 바다의 냄새가 그리운 그런 날이 있다. 특히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이면 더 그렇다. 그럴 땐 바다에 가야만 할 것 같다. 왠지 바다도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마음은 벌써 바다 앞이었지만 늘 그렇듯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여러 날이 지나야 했다. 예약을 하고 기다리고 몇 번의 저녁이 흘러갔다. 실은 이런 기다림이 더 낭만적이기도 하다.


 이윽고 바닷가 캠핑의 날이 왔고 도로를 달리며 만난 바닷가 지명 이정표에 마음이 설렜다. 차창 밖의 풍경들이 순간순간 바뀌는 것을 바라보면 불안이나 걱정도 순간 머물렀다가 금방 지나가버리고 좋은 기분이 차오른다. 그래서인지 비가 한두 방울 계속 흩날렸지만 바다에 도착하면 맑을 거라는 어떤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도착해서 텐트를 치는 순간부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꺼내놓은 장비들이 하나둘씩 비에 젖어가는 것에 마음이 급해진 우리는 서둘러 텐트를 쳤다. 그렇게 비를 피하고자 급히 텐트를 쳤지만 텐트 안에는 이미 비가 상당히 들이쳐있었다. 텐트와 타프를 다 치고 나자 비를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캠핑은 작은 일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데  탁월한 면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자정이 한참이 지나서야 비가 그쳤고 다음날은 놀랍도록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바다로 손을 잡아 끄는 아이를 따라 바다로 나가보았다.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과 선명한 파도소리에 그제야 나는 바다에 왔음을 실감했다. 정말 그리웠던 바다였다. 바다는 어제 내린 비로 더 선명해진 것 같았다.



 해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옆지기가 밥을 안쳐놓았다. 칙칙 거리는 압력 추에서 고소한 밥 냄새가 풍겼다. 밥 짓는 냄새는 언제나 마음을 너그럽게 한다.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냉동 떡갈비를 노릇노릇 구워내니 금세 맛있는 한 상이 차려졌고 고소한 누룽지까지 곁들여 먹고 난 아이들의 얼굴엔 만족감이 번졌다. 이제 뭘 하면 좋을까.



 

 우리는 오전의 맑음을 여유롭게 즐기기로 했다. 모두 새로 산 야전침대를 햇살 좋은 곳에 펴 두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가, 그림을 좋아하는 딸내미는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사각사각 펜을 움직였고,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아들은 아빠와 캐치볼을 했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해변에 자리를 깔고 누워 햇살이 바다로 다이빙하는 것을 구경했다. 햇살이 제법 뜨겁게 느껴질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바다는 잔잔했고 바람은 부드럽게 밀려들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만 바라보는 시간이 바다 캠핑의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해변의 날씨는  신기하다. 그렇게나 맑았던 날씨가 점심을 먹고 나자 서서히 흐려지더니 비가 다시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제법 빗줄기가 굵어졌다. 해가 사라지고 비가 세지기 시작하니 기온도 떨어졌다. 우리는  옷을 꺼내 입고는 이번에도 유명산에서처럼 간이 난로를 피우고 타닥타닥 타프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빗소리가 커질수록 파도 소리가 묻혔다.  비가 언제쯤 그칠는지. 어제처럼 자정이나 되어야 그칠까.



 해변의 날씨는 정말 변화무쌍했다. 비가 그렇게 세게 내리더니 저녁이 되자 빗소리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러곤 이내 그쳤다. 비가 그치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해변으로 달려갔다. 해변의 빨간 등대에 무지개가 반쯤 걸려있었던 것이다. 선명한 무지갯빛이었다. 비가 그치고 금방 떠오른 무지개라니. 갑자기 무지개를 만나는 일은 깜짝 이벤트처럼 즐거움과 흥분을 안겨주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캠핑장에 머무는 사람들 모두 무지개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거나 웃었다. 이렇게 다채로운 날씨의 마법에 모두가 행복해하고 있었다.

 

 

무지개가 사라지고 나자 하늘엔 핑크빛 구름이 찾아들면서 서서히 밤이 내렸다. 바다는 잠시 핑크빛이 되었다가 보랏빛이 되었다가 남빛이 되어갔다. 렌턴에 붉을 밝히고 나자 신기하게도 파도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텐트 바로 앞까지 파도가 치는 것처럼. 캠핑장은 첫날과는 다르게 무척 조용하게 느껴졌다. 모두 각자의 공간들에서 조용히 파도소리만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파도소리를 들으며 밤이 깊어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바다는 다시 맑음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빛나는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장비를 말리고 정리했다. 우리가 해변에 머물렀던 서른아홉 시간 동안 두 번의 비와 두 번의 맑은 햇살, 한 번의 무지개를 만났다. 그 서른아홉 시간 동안 파도는 수없이 밀려들었고 바람에 수없이 잔물결이 일었다. 그 서른아홉 시간 동안 나의 감각은 평소보다 열심히 움직였다. 빗소리를 듣고, 파도소리를 듣고, 햇살을 보고, 무지개를 보고, 멀리서 날아오는 바다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나는 청량한 물에 세수를 마친 사람처럼 상쾌한 기분이 되어있었다. 다시 해변의 시간을 가지러 올 때쯤, 나는 녹슨 감각을 데려오겠지. 잔뜩 굳어있는 그들을 깨워 다시금 움직여보라고 격려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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