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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Jul 11. 2021

꽤 고상하고 따뜻한 초록

가을에만 만날 수 있는 초록빛을 찾아서. 양평 다목적 캠핑장

  

 몇 해 전 가을이었다. 여름이 막 끝나고 아침 저녁으로 조금씩 서늘한 바람이 불던 그런 날. 문득 캠핑이 가고 싶어 졌다. 나무들이 아직 초록빛을 가지고 있던 그런 날이었다. 그때의 푸른빛은 봄날의 초록과는 다르다. 넓게 보면 다 초록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좀 더 농도가 짙은 뭔가 좀 쓸쓸한 느낌이 드는 초록이다. 신기한 것은 오후가 되어 그 잎들이 황금 가을 햇살을 받아 흔들리면 꽤 고상하고 따뜻해 보인다는 것이다. 캠핑장에 앉아 그런 나무들을 바라보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가을의 문턱을 넘으면 으레 그래왔던 것 같다.


 

 

  가을 햇살이 비치는 나무들에게서는 가을의 냄새가 났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 안의 후각은 특유의 향기를 기억한다. 봄에는 향긋한 흙의 냄새 꽃과 풀의 냄새, 여름에는 나무의 숨결을 따라 흐르는 싱그러운 냄새가, 가을에는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의 향기를 기억한다. 양평의 숲에서는 그런 가을 냄새가 났다. 봄날 투명할 정도록 맑았던 연두를 지나 비와 바람과 햇살 아래서 점점 진해졌던 여름날의 잎새는 어느새 가을 초록빛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나무는 서서히 물을 거두고 잎새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기온이 떨어지면 잎들도 다 떨어질 것을 아는 것처럼. 그래서인지 주어진 시간에 비치는 아름다운 가을 햇살을 받아 더욱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듯했다. 그 고상하고 따뜻한 초록빛 아래에서 아이들은 오랜만의 캠핑이라 신이 났다.


 

 숲에서는 금방 해가 진다. 가을 해는 더욱 그러하다. 해가 지기 전에 부지런히 텐트를 치고 장작을 사 왔다. 숲에서는 해가 지고 나면 주변이 모두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일까. 렌턴의 빛을 밝히고 나면 우리가 머무는 단 몇 평의 작은 공간만이 아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점차 어둠에 적응을 해가며 렌턴의 밝기를 조금씩 줄여간다. 아늑한 공간이 익숙해지고 나면 적은 빛으로도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장작에 불을 붙인다. 역시 가을 캠핑의 꽃은 모닥불 아니던가. 그 어느 계절보다도 장작이 잘 타오르는 계절. 잘 건조된 장작이 주는 즐거움은 꽤 크다. 약간 쌀쌀한 날씨는 우리를 장작 앞으로 모이게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나중에는 장작의 이야기만 타탁 타탁 듣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저 타오르는 불꽃만 보게 되는 것이다. 불이 사그라지면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나무의 형체도 하나둘씩 드러나 다정한 이웃이 된다. 그리고 먼 데 하늘의 별이 이웃이 된다.



  

 숲에서는 항상 새소리에 잠이 깬다. 새들이 그들의 아침을 요란하게 보내는 동안 일어나 텐트를 열고 나가면 가을만이 보여주는 고상하고 따뜻한 초록빛에 눈이 환해진다. 맞다.  초록빛을 보러 여기에  거였지. 어젯밤 우리의 캠프파이어에 조용히 참석했던 이웃들의 초록빛이  따뜻하고 의연해 보였다. 가을의 나무를 바라보면 가끔씩 나이듦에 대해, 변화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날, 가을 숲에서 헤세의 시가 떠오른  고상하고 따뜻한 초록빛이 마침 가을빛으로 바뀌고 있던 찰나였다.



꽃은 모두 열매가 되려 하고
아침은 모두 저녁이 되려 한다.
이 지상에 영원한 건 없다.
변화와 세월의 흐름이 있을 뿐    - 헤세

 

 


  다시 가을이 오면 그 초록빛을 찾으러 그때 그랬듯 홀연히 그렇게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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