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앵이가 우리 집에 왔다. 일곱 살 아들이 알록달록한 호금조를 키우고 싶어 해서 조르던 차에 그럼 엄마가 올해가 가기 전에 키우게 해주겠다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삼개월을 꼬박 기다리다가 새를 만나러 갔다. 첫눈에 반하는 것이 이런 것일까. 앵이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려 호금조가 아닌 사랑앵무를 데리고 오게 되었다. 앵이를 따라 새장도 먹이도 따라왔다. 앵이 한 마리가 들어오는데 함께 준비해야 할 것이 참 많구나 싶었다. 아이들 성화에 새를 키우게 되었지만 그런데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 미리 새를 키우는 법 등을 나름 찾아보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지만 심장 뛰는 어린 새의 보드라운 깃털이 손에 닿는 순간 걱정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리의 비둘기가 많이 모여있거나 하면 경계하며 걸을 정도로 새와는 거리가 먼 나인데 말이다.
그렇게 차가운 겨울에 우리 집에 온 앵이. 처음에는 새장에서 나오지 않고 먹이를 주면 조금 받아먹다가는 그 동그란 눈망울로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먹이를 주다가 앵이의 부리에 손도 몇 번이나 물렸다. 순간 따끔했지만 저도 낯설어서 힘들구나 싶었다. 몇 주가 지나고서는 새장을 열어두면 스스로 나와 뒤뚱뒤뚱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아직 날기엔 날개가 덜 자랐기 때문에 앵이는 걷는 게 일상이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면 꼭 우리를 반기는 듯 새장에서 예쁜 새의 소리를 내는 앵이가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것은 애정을 동반한 익숙함이었다. 어디 갔다 돌아오면 새의 휘파람을 들려주는 것이다. 어쩌다 손을 가까이하면 살짝 손등 위로 올라오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어김없이 아이들이 무척이나 흥분해서는 즐거워했다. 나도 덩달아 앵이의 모습에 시선이 따라다녔다. 앵이가 쿠션이나 매트 솔기를 작은 부리로 톡톡 건드리거나 의자 사이를 열심히 걷는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워졌다. 전에 없던 작은 새에 정이 들어 지내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