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기
겨울 모드. 나는 지금 겨울을 나고 있다. 마음은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생각들로 총총하고, 몸은 한없이 느려진 상태로 겨울을 통과하고 있다. 기온이 떨어지니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을 나열하다가도 찬 공기에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다. 겨울과 함께 일어나는 시간도 조금씩 늦어지고, 걷기 운동도 멈추었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안락한 집에 머무르며 찬 공기를 마주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두 달 넘게 겨울을 보내야 하니까. 그럴 땐 숲으로 가는 것이 좋은 방법. 숲에 가는 길에 만나는 차가운 공기를 나의 숨으로 데울 테니까.
얼음 같은 날씨에 짐을 메고 산길을 오르는 일. 어찌 보면 사서 하는 고행길이다. 다만 목적지에 도착해서 텐트를 지고 나면, 힘들지만 마냥 힘들지만은 않은 어떤 즐거움이 있다. 오늘 하루 쉬어갈 수 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게을러지는 나를 이기고 겨울을 마주하는 뿌듯함이랄까.
여름내 무성했던 나뭇잎들은 모두 사라지고 빈 가지만 앙상할 거라 생각했는데 숲엔 솔잎이 여전히 푸르렀다. 푸르름을 남긴 채 겨울을 나는 키 큰 나무를 보니 멋진 벗을 만난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진다. 언제 보아도 이곳의 나무들은 멋진 존재다. 차갑다고 피하지 않고, 묵묵하게 그 자리에서 겨울을 맞는다. 무겁고 시린 눈도, 서릿발 날리는 바람에도 물러서지 않고 견디는 존재들. 그 옆에 서서 하루 묵어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밤이 되자 장작을 피우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장작을 바라보니 그동안 총총하던 무성한 잡념들은 함께 재가 되어 사라지고 그저 장작이 나눠주는 온기와 빛만 마음에 가득해진다. 그릇은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했던가.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겨울밤, 겨울 숲에서 모닥불을 마주하는 일은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게 한다. 뜨거워진 열기를 식히며 바라보는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저렇게 많은 별들이 내려다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한 사람 혹은 두 세 사람이 모여 앉아 모닥불 앞에 손을 내밀고 불을 쬐는 모습이 아주 오래 전과 닮았을까. 별이 가득한 하늘을 마주하니 아주 멀리 떠나온 것 같이 아득해졌다.
모닥불이 사그라질 때까지 빛을 쬐며 앉아 있었다. 장작은 한 줌의 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조금씩 타오르며 빛을 나누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그들이 어느 숲에서 왔을지는 모르지만, 너그러웠을 그 숲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바라보다 보니 등이 시렸다. 그렇지 겨울이지. 이제는 작은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긴 밤을 잠으로 채울 시간이다.
다음날 아침에 눈에 띈 것은 하얗게 내려앉은 서리였다. 아직 초록을 가진 풀들과, 지난 가을의 밤송이와, 갈잎으로 바스락거리는 잎새에 서리가 우아하게 장식을 해놨다. 살짝 손을 데면 투명해지는 멋진 서리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숲을 내려갔다.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지는 아주 느긋한 하산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