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앙마이에 갔다가 두리안에 반하고 온 사적인 과일 이야기
지난여름, 보름 동안 치앙마이 여행을 다녀왔다. 첫 태국 여행 때는 두리안이라는 과일이 있는 줄도 몰랐고, 두 번째 태국 여행에서는 한번 맛보고 난 뒤 그 향과 진득한 식감에 더 이상 못 먹겠다 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이번에는 두리안을 찾아서 먹을 정도가 되었다. 시작은 망고스틴이었다.
치앙마이의 첫 숙소로 님만해민에 있는 콘도를 잡았다. 그 콘도는 님만해민의 맛집과 마야몰을 슬슬 걸어 다니기 좋은 곳이었다. 숙소 근처에 테스코와 편의점이 있어서 간단히 장을 보기에도 좋았고 그랩을 타면 치앙마이 내의 관광지 이동도 편리한 곳이었다. 그런 위치적인 장점 때문인지 콘도에는 여러 국적의 장기 여행자들이 많이 머물고 있었다.
여행 첫날, 30일 유심칩을 마야몰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고 해서 마야몰을 찾게 되었는데 가는 길에 눈에 띄던 과일 노점상이 있었다. 그 노점은 씽크파크 입구에서 다양한 열대과일과 코코넛을 팔고 있었다. 특히 망고스틴과 두리안이 아주 많았다. 우리가 갔던 여름이 망고스틴 제철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싼 가격에 망고스틴을 많이 팔았다. 한국에서 냉동 망고스틴만 먹다가 생과를 보니 눈길이 저절로 갔다. 그래서 우리는 노점 옆에 앉아 달콤한 생과의 맛에 감탄하며 망고스틴 한 봉지를 다 먹었다. 그렇게 망고스틴을 먹고 나니 망고스틴 보다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서 노란 자태를 뽐내며 진열되어 있던 두리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두리안도 먹어볼까?
두리안은 망고스틴 보다 양도 적은데 가격은 서너 배 이상 비쌌다. 두리안의 종류에 따라서도 가격 차이가 많이 났다. 우리는 나름 고심하다가 적당한 가격과 크기를 골랐다. 그렇게 두리안을 먹어보았는데 그 맛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동안 내가 너를 몰라봤구나! 어쩜 이렇게 부드럽고 달콤한지.
철퇴 같은 껍질 안, 노랗고 통통한 과육이 진한 풍미와 단맛을 가지고 있었다. 왜 두리안을 두고 과일의 황제라 칭하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 두리안의 맛에 빠져들었다. 꼬마 아들만 빼고.
과일에도 진입장벽이 있다. 특히 두리안은 호불호가 강하다. 향이 강하기 때문에 호텔에서도 NO DURIAN 표시를 자주 볼 수 있다. 나도 거의 십이 년 만에 다시 맛보게 되었으니 십 년 이상의 진입장벽을 겪은 셈이다. 진입장벽을 허무는 것은 선입견을 버리는 것이 관건인듯하다. 냄새가 강하고 친숙하지 않은 과일에 대한 부정적이던 생각이 허물어지고 나니 그때부터는 두리안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과일 노점 근처에는 두리안 카페도 있어 그곳도 찾아갔다. 먼저 두리안을 고르고 나면 다들 준비된 티테이블에 앉아 두리안을 먹는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듯 여행자들이 위생장갑을 한 장씩 끼고 두리안을 먹는 모습은 참 재미있다.
나중에 숙소를 올드타운으로 옮기고 나서도 두리안을 먹으러 씽크파크 앞 노점을 종종 찾아갔다. 올드타운 내에서도 두리안을 파는 곳이 많았지만 님만해민을 들릴 때는 꼭 처음 두리안을 먹었던 그 노점으로 갔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에 한 번 두리안을 먹었다.
치앙마이의 일정이 지나고 방콕으로 넘어갔을 때였다. 터미널 21 지하에 있던 마트에 갔다가 두리안이 보여 바로 사서 나왔다. 그때 우리는 스쿰빗의 한 호텔에 머물렀는데 역시나 NO DURIAN이었기 때문에 쇼핑몰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두리안을 먹었다. 아 이쯤 되면 두리안에 푹 빠지게 된 것이다.
아이콘 시암의 과일 노점에서는 간이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서 두리안을 사면 그 자리에 앉아서 먹을 수 있었다. 거기다 칼로 먹기 좋게 두리안을 썰어주기까지 한다. 두리안을 먹고 있는데 가게 주인 아저씨가 커다란 두리안 하나를 꺼내 해체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두리안을 다 먹고서도 노란 속살이 가지런히 진열되는 것까지 구경하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지 몇 달이 지났지만 나는 두리안이 그리워 한국에서도 생과를 파는 곳이 있는가 찾아보았다. 한국에서는 가락시장에 생과를 파는 곳이 있다고 하던데 찾아갈까 하다가 말았다. 그래야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 여행길에 두리안을 먹으며
내가 너를 무척 그리워했어. 바로 이 맛이야.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새로운 맛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발견한 즐거움이 전혀 맛보지 못했던 달콤한 과일이라면, 일상이 무거울 때 그 달달함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