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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Jan 05. 2020

대만 아리산 유람기

- 천년이 넘는 나무들이 가득한 숲으로의 여행

그런 멀미는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그 하오싱 버스 때문이었다. 하오싱 버스는 자이 역에서 아리산까지 가는 고속버스로 하루에 열 번 정도 운행을 한다. 우리는 타이베이에서 고속열차인 가오티에를 타고 한 시간 반 만에 자이 역에 도착했다. 아침에 서둘러 출발해서 그런지 10시가 좀 넘은 시간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버스에 앉자마자 오래된 차 특유의 매연 냄새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큰일이었다. 앞으로 꼬박 2시간 40분을 구불거리는 산길을 달려가야 하는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멀미에 약한 아이들은 버스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잠도 오지 않던 나는 버스에서 직통으로 멀미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깊은 골짜기와 그 사이로 보이던 차밭, 빽빽하게 서 있던 키 큰 이국의 나무들을 보며 잠시나마 멀미를 달래곤 했다. 조금만 더 가면 아리산이야.

천년이 넘는 사이프러스 나무들과 이천 년 이상 된 신목(神木)을 보는 일이 쉽지 않은 건 당연할지도 몰라


아리산은 타이완을 대표하는 명산으로 1000년 넘는 나무들이 즐비할 정도로 태고의 숲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을 준비하기 전에는 아리산이 중식당 이름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아리산에 대해 알게 되니 겹겹의 시간이 쌓여 거대한 숲을 이룬 아리산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타이베이에서 가오슝 가는 길에 시간을 내 아리산에서 머물기로 한 것이다.


멀미가 너무 심해 버스에서 내리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리산의 상쾌한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리산 역과 여행자 센터, 세븐일레븐이 눈에 들어온다. 일단 여행자 센터에 가서 호텔 셔틀을 신청한 후 숙소에서 짐을 풀고 다시 나와야겠다 싶었다. 점심도 먹고 아리산 역에서 하이킹을 위한 당일 열차권도 사고 다음날 일출 열차 표도 예약할 생각이었다.


아리산 역 옆의 세븐일레븐은 식당과 터미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편의점 내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거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다음날 자이 역으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한 후 마파두부 덮밥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는 오늘의 하이킹을 위해 삼림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해발 2451m를 달리는 아리산의 삼림 열차는 페루의 안데스산 철도, 인도 히말라야 등산 철도와 함께 세계 3대 고산 철도 중 하나라고 한다. 원래는 목재를 운반하던 기차였는데 지금은 관광기차로 운행되고 있다. 하이킹 코스는 보통 아리산 역에서 삼림 열차를 타고 션무 역이나 자오핑 또는 쭈산 역에 내려서 산을 걸어 내려오는 식으로 그 코스가 셀 수도 없이 많다고 한다. 우리는 션무 역에 내려 오늘의 숙소인 아리산 빈관까지 가는 코스로 정하고 길을 나섰다.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빨간 삼림 열차를 보고 흥분해서는 이 숲에서 꼭 용이 나올 것 같다며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션무 역에 내려 지도를 보며 하이킹을 시작했다. 드디어 아리산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무들이 빽빽하게 모여 위로 뻗어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밝은 낮인데도 얇은 커튼을 친 것처럼 적당히 어둡고 신비했다. 여행자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저 깊은 곳에는 어떤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있을까.

과연 숲에는 천년 넘은 고목들이 많았고 더러 오래전에 죽은 나무들도 있었다. 어떤 나무는 그루터기만 고스란히 남은 채 죽어 있었는데 밑동이 너무나 커서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졌다.

아리산에는 연못도 있었다. 연못 한가운데, 죽은 나무 위로 이끼와 풀들이 생을 이어가던 즈메이탄 연못. 안개가 낀 날이면 이 연못의 분위기가 신비롭다고 한다. 산의 반영을 보여주는 맑은 날의 고즈넉함도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오래된 나뭇등걸에는 이끼와 고사리들이 많았다. 연한 녹색의 이끼들이 시간과 시간 사이를 이어주는 것만 같았다. 한 자리를 오랜 시간 동안 지키는 나무들에게서는 선한 기운이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약 두 시간가량 산책하듯 숲을 걷다 보니 어느새 하이킹도 끝이 났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그 겹겹의 시간들을 묵묵히 버티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수많은 여행자들을 부르는 힘이 생긴 걸까?

숙소로 돌아와서는 해질 무렵에 호텔 옥상으로 올라갔다. 숙소가 해발 2100m가 넘는 아리산 풍경구 내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옥상에서는 운해가 가득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운해는 저 산들이 바다의 섬처럼 보이게 해주는 구름들이야. 저기에서 해가 지니 참 신기하지?

운해 속 일몰을 지키며 사라지는 빛들을 꼬마 아들과 함께 바라보니 멀미에 시달리며 여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로비에는 내일의 일출 시간과 아리산 역까지 가는 셔틀버스의 첫 시간이 표시되어 있었다. 우리도 모닝콜을 신청하고 숙소로 올라가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리산에서 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하이킹, 또 하나는 일출 보기였다. 하이킹은 첫날 짧은 코스나마 맛보기를 했는데 과연 일출은 볼 수 있을지. 꼬마들이 잘 일어나 준다면, 비만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일출 열차를 탈 작정이었다.

다음날, 꼬마들은 모닝콜과 함께 잘 일어났고 비도 오지 않았다. 로비에서 셔틀을 기다리다 보니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함께 나온 같은 목적의 여행자들의 설렘이 보인다. 곧 셔틀이 왔고 부지런히 아리산 역으로 달려갔다. 이미 아리산 역에도 여행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윽고 일출 열차가 도착했고, 우리는 아이들을 하나씩 품에 안은 채 또다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덜컹거리며 새벽이 오는 어둠을 달려갔다.


약 25분쯤 갔을까. 종점지인 쭈산 역 도착 안내 방송이 나오고 열차가 멈췄다. 우르르 쏟아져 나온 여행자들이 모두 한 곳으로 걸어간다. 아 다행이다. 하늘은 꽤 맑은 편이었다. 잘하면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해가 뜨기 전이라 그런지 꽤 쌀쌀했다. 꽤 두껍게 무장을 했다고 했지만 추위가 스며들었다. 우리는 가지고 온 담요로 아이들 몸을 돌돌 말아주고는 몸을 데울 것이 없는지 주변을 살펴보았다. 마침 쭈산 역 앞에 상점들이 있었다. 혹시나 싶어 가보니 따뜻하게 데운 두유를 파는 것이 아닌가. 따뜻한 두유를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훈훈해졌다. 그러고는 함께 전망대로 걸어갔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운해와 산들이 우리를 맞아준다. 그리고는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사진들을 찍어가며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행히 일출을 볼 수 있었다. 파란 하늘에 떠오른 해는 우리 몸의 추위를 걷어가고 마음에 감사함을 심어주었다. 한편 아이들은 일출이 처음이라 신기하다며 사진기를 가져가서 서로 찍어 본다고 난리였다.

그렇게 일출을 보고 우리는 7시 45분 열차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쭈산 역에서부터 걸어서 하이킹을 하며 내려갔지만 새벽부터 일어났던 우리는 열차를 타는 것이 백번 잘하는 선택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던 산을 알게 되고, 그리워하다 만나게 되고, 그 산으로부터 잊지 못할 행복한 기억을 받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사람과의 만남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가니 따뜻한 아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맥스가 모험을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겨주던 따뜻한 식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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