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숲 Jan 09. 2020

매일 저녁 라디오를 듣는 일

- 매일 저녁 여섯 시면 라디오를 켜고 송출되는 위로를 수신합니다


라디오를 듣는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다는 건 또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이제껏 알지 못했던 음악들과

익숙한 음악들을 마음 서랍에 켜켜이 담은 일

디제이가 들려주는 가보지 못한 여행지 이야기와

그곳을 마음속으로 떠올려 보는 일

가끔 내가 보낸 사연이 세상에 송출되는 일


라디오를 듣는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디제이가 들려주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하지만 그건 또 어떤가요

오히려 낯 모르는 사연이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아 라디오를 듣는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아름다운 모국어로 송출되는 언어와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 시간

매일 저녁이면 나는 나의 라디오를 켭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 아이들을 챙기고 출근을 하는 일, 차를 마시는 일,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는 일, 청소는 가끔. 그런 일들 사이에서 매일 같이 하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매일 저녁 여섯 시에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챙겨 듣는 것이다. 저녁에 약속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내가 하는 일이다. 여행지에 가서도 별일이 없으면 라디오 앱을 켜서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즐겨 듣는 것을 아니까 남편도 그 시간이 되면 라디오를 켠다. 딸내미도 미리 라디오를 켜 둘 때가 많다. 그리고 어느새 시계의 숫자가 6으로 바뀌고 익숙한 시그널 음악을 듣는다.

Colin Blunstone의 Tiger in the night  

이 음악만 들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해질 수가 없다. 시그널 음악에 마음이 조금씩 무장해제되다가 볼륨이 서서히 낮아지면서 디제이 전기현님의 오프닝 멘트가 이어진다. 매일의 오프닝 멘트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항상 마무리는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로 끝이 나고. 이 마지막 한 마디를 듣고 나면 고달팠던 낮의 기억들도 꽤 괜찮았던 날들이었던 것처럼, 가족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저녁을 맞게 되는 것이다.


딸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 무렵부터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으니까 애청자가 된 지 12년이 넘었다. 첫아이를 키우던 육아 초보이던 그때, 아기를 돌보며 저녁밥을 지으며, 이유식을 먹이며 그렇게 틀어놓았던 라디오였다. 그때 나오던 음악과 이야기들이 아이를 키우던 초보 엄마에게 잔잔한 위로가 되었다. 출퇴근이 없는 휴직 맘이었지만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이루마님의 목소리(그때 디제이는 이루마님이었다.)를 들으면 고단했던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실제로 퇴근하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육아에 퇴근은 없다마는 그 멘트를 들을 때만은 마음이 노곤 노곤해지는 것이었다.


가을이나 봄에는 오프닝과 함께 노을이 찾아온다. 어느 봄날 퇴근길, 엄마 언제 오냐며 채근하는 둘째 꼬마의 전화를 끊고 서둘러 가는데 라디오 주파수에서 익숙한 시그널 음악이 들린다. 그리고 신호대기 중 눈에 띄던 분홍 노을.

맞아, 봄날 저녁 여섯 시의 하늘은 예쁜 노을이 찾아들기 좋은 시간이야.

오프닝이 끝나자마자 Enya의 Paint the sky with stars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서두를 일도 없고, 지쳤던 일도 없는 아주 편안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송출된 위로를 차 안 작은 라디오를 통해 수신받은 덕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만 아리산 유람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