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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작쟁이 Mar 30. 2021

나는 일용직 감사 노동자

나는 일용직 노동자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당 쟁이 일용직 노동자.


눈을 뜨자마자 

밝아온 아침에 감사를 드리고

시린 코 끝을 한번 쓱 비비고 

폐로 스미는 찬 바람에 감사를 싣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발 끝을 조금 웅크리고 찬 바닥에 발을 딛는다.

삐그덕 소리 내는 책상 의자에 앉아

유리 깔린 책상 위로 펼쳐진 감사 일기장을 확인한다.


오늘이 며칠째더라

어제가 52일째였으니 오늘은 53일이겠네.


탁상달력을 들고 손목시계에 표시된 날짜와 다시 한번 맞춰본다.


오늘은 3월 30일 그리고 화요일이다.

화요일은 Tuseday

아니 아니 Tuesday

여기까지 적고 뽁뽁이로 둘러놓은 창밖을 훑어본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대신

안에서 밖으로도 내다볼 수 없는 꽤나 공평한 시스템.

흐릿한 창밖의 풍경으로 오늘의 날씨를 가늠해본다.


뭉게뭉게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건 보일러가 만들어낸 한숨.

이 방도 보일러 좀 떼야하나. 춥다.


책상 위의 일력 달력을 한 장씩, 두 번 넘긴다.

너저분한 책상 위에는 달력이 세 개

소박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참 여러 개의 달력이 필요하구나.

내게 바쳐진 이름 모를 나무에게 사과를.


쓰임보다 쓰는 것이 많은 사람은 다시

감사를 입에 담는다.


짧은 아침에 모인 감사를 하루 종일 꽁꽁 묶어두었다가

아주 조금씩 꺼내어 쓴다.


하루치의 감사로 하루를 살아내는 나는 일용직 감사 노동자.


감사한 아이들

감사한 이웃

감사한 하늘

감사한 땅과

먼 곳에 있는 나의 자매들.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티는 나는 일당 쟁이 감사 노동자.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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