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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작쟁이 Jan 10. 2021

내 진짜 꿈은 한량이었다.

흔하디 흔한 꿈 한 톨 없이 그저 흘러오다 만난 진짜 이야기

'시간 날 때 전화 좀 부탁해.'


갑작스러운 친구의 연락에 그러겠노라 짤막한 답장을 했다.

그리곤 아이 등원 가방을 마저 챙겼다.

평범한 평일 아침의 시작.


"잘 다녀와~"

노란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멀어지는 버스를 눈으로 좇으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 있어?"

한번 시작된 대화는 끊어질 줄 몰랐다

나의 이야기, 친구의 이야기 

그리고 주변의 이야기.

과거부터 현재의 이야기까지 그녀와 나 사이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가끔씩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다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결국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건 죄다 노는 거잖아."


그렇다.

나는 놀고 싶은 사람이다.

장사가 안 되는 카페나 한산한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갖고 싶은 사람.


생각해보니 그때도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커피와 책을 좋아하니 북 카페를 열면 좋겠다고 남편이 권유했을 때.


"여보, 북 카페는 공간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그럼 임대료가 비싸겠지? 임대료는 내가 커피를 팔아서 내야 하잖아. 그게 아니야. 나는 손님이 안 왔으면 좋겠는데, 그럼 돈을 못 벌 테고, 무슨 돈으로 임대료를 내지?"


"그러려면 돈이 많아야겠네." 

라는 말을 끝으로 남편은 입을 닫았다.


내가 이 '손님이 없는' 시리즈를 이야기할 때 친구는 웃음을 터트렸다.

"카펜데, 왜 손님이 없어야 해?"

"손님이 많으면 내가 못 놀잖아. 난 책 읽고 뜨개질하고 커피 마시고 싶은데, 손님이 많으면 일만 해야 하잖아."


아는 사람 중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도 처음엔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매일 마시는 커피, 남의 가게 대신 내 카페에서 우아하게 앉아 마시면 얼마나 좋아?"

그도 카페를 오픈하고서야 깨달았을 것이다.

현실의 온도는 생각했던 것만큼 따뜻하지 않다.

꿈 많던 사람들이 현실에 물 들어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나 역시 별 다를 것 없는 사람이니 또한 그렇게 되겠지.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다.

어제 뽑아놓은 에스프레소 샷을 컵 채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다음 날 물에 타 먹는 일.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다.


"집이 아닌 내 공간이,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어."

"네 공간이 필요하면 오피스텔이면 되지 않아?"

"아니야, 혼자 쓰는 공간 말고 필요할 때는 함께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고 공부를 하고 싶어. 동네 사랑방처럼. 하지만 정체가 모호하니까 카페이거나 동네 부동산 정도면 좋겠어."

친구가 말했다.

"아, 너는 누구든 원한다면 들어올 수 있는 네 놀이터를 원하는 거구나?"


그런가?


"아닌척하는데, 참 사람 좋아해."


글쎄, 그것도 잘 모르겠고.


경제적으로 보았을 때 하등 가치가 없어 보이는,

이 작지만 커다란 소망은 나의 정체성이 '한량'이라고 소리 지른다.


나의 장래희망은 한량.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다.

마흔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 철없다고 욕해도 별 수 없다.

나는 놀고 싶다.

가끔은 사람들과 함께 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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