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시간 글쓰기
아이들 시간관리를 위해 사 두었던 1시간짜리 타임 타이머를 한 바퀴 휙 돌리고
노트북 앞에 앉아 1시간 동안 그저 쓴다.
수 없이 많은 책들 가운데 정작 들춰보게 되는 책은 몇 없다.
무겁게 들고 왔던 책을 다시 무겁게 들고 가 반납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기어이 들춰보게 되는 '쓰기 책'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무게감으로는 이미 나 하나로도 충분하여 더는 무거운 책이 싫다.
책장 안에 읽지 않은 책들이 가득해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이유다.
최근 몇 년간은 책을 사 모으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
책과 가까이 있는 느낌은 언제나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기에
그 사이에서 사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꺼내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언젠가는 텅 빈 내 안이 타인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것이 무서웠고
내 안에 나의 이야기가 부재하다는 사실이 겁났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쓰기'를 시도하고 또 멈추고
결국 나는 여기에 있다.
매일 1시간
죽도 밥도 안 된 나의 글을 만날 시간이다.
아직 약속한 시간이 30분이나 남았으니 뭘 더 써볼까
음,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는 저장만 해둔 글이 꽤 된다.
문득 스치는 키워드만 적어 둔 글도 있고
마구 적다가 용기가 부족해 발행하지 못한 글도 있다.
핸드폰 사진첩에는 아이들의 사진이 대부분이지만
일상을 기록해두려고 찍어 둔 몇 장의 사진도 있다.
그중에 가장 최근은
오늘 아침에 찍은 커피와 한라봉 롤케이크 사진이다.
위장의 의견은 다르겠지만
나는 아침에 밀크 커피를 마시는 걸 좋아한다.
선선한 공기를 헤치고 나가
따뜻하게 데운 커피잔에
밍밍하게 탄 카누 더블샷 라떼를 빈 속에 마시는 걸 좋아한다.
솔직히 좀 속이 쓰리긴 한데
이걸 누군가에게 말하면 다들 잔소리를 하니까 속으로만 말한다.
'음 역시 속이 쓰리네.'
그래도 오늘은 롤케이크 친구도 있다.
나는 파리바게트에서 파는 한라봉 롤 케이크를 좋아한다.
우선은 향이 좋고 롤케이크가 내게 주는 향수가 있다.
이제는 하나 다 퍼먹어도 좋을 만큼 나이가 들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한 지금이 좋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서 현재의 감사함을 느낀다.
그때는 없었고 지금은 있는 그런 것들에 대해.
향수라고 부를 수 있는 지나간 것들의 아쉬움.
그것들이 지금의 감사를 만든다.
나에 대해 글을 써보자고 생각한 날들을 모으면 꽤 많은 날이 될 것이다.
돈 주고 사는 기계에는 상세히도 사용법이 나와있는데
평생을 함께 사는 나에 대한 정보가 참 모자라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싫으나 좋으나 평생 나는 나와 함께 살아야 한다.
일찍 죽든 늦게 죽든 매 한 가지이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나와 내가 함께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필연이라면 내가 나를 좀 더 이해하면서 살고 싶다.
때문에 일찍부터 심리학에 관심을 두었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
시중에는 양질의 책들이 많다.
그것들이 나의 일부분을 설명해주기도 하였다.
잠깐의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에 나쁘지 않았지만
좀 더 매뉴얼화된 나만의 사용설명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것을 만들 것이라면 그때가 지금이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침 나는 하루 1시간 동안 글을 쓰기로 했고
나의 일련의 행위들을 피드백해 줄 사람도 있다. (차차 소개해야지.)
나의 평생 숙제와 같은 이 일들을 드디어 시작(또는 마무리)할 수 있는 지금이 주어져 감사하다.
(역시 아침에 글을 쓰면 감사함이 샘솟는다.)
이 마음을 가득 안고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