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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해지는 왜 이리 피곤할까

대충 사는 상담사의 일상

인테리어를 앞두고 약정이 만기 된 인터넷과 TV를 해지하려고 마음먹었다. 평생 살아오면서 통신사 해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숨 한번 쉬고 마음 단단히 먹고 달려들어야 하는 일임을 익히 알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나이다. 이 골치 아픈 도전을 또 해보는 중이다. 


우선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 나는 3년간의 약정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내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때까지 딱 배를 깔고 엎드려 기회를 보았던 것이다. 드디어 약정 기간이 끝나자 상대방이 먼저 작전을 펼친다. 다시 무슨 혜택을 줄 테니 계속 이용해 달라는 것이다. 달콤해 보이지만 냉정한 시각으로 봐야 함을 나는 안다. 그리고 나는 목돈인 지원금을 받고 갈아타기를 하려는 계획이 있다. 그래서 잠잠히 때를 기다린다. 


이사날짜가 정해지고, 드디어 때가 되었다. 나는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건다. 연결도 어려운데 요즘은 보이는 ARS이니 더 불편한 과정을 거쳐서 어쨌든 사람과 통화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해지 전담부서'인 사람에게 다시 연결된다. 자, 이제 시작이다. 


각 통신사마다 해지전담부서가 있고 이는 이탈하려는 고객을 중단시키는 역할을 한다. 상담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의 해지를 방어하려고 할 테지. 우선은 신사답게 들어본다. 기존의 할인혜택을 유지하면서 이곳에서도 지원금을 주겠다고 한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금액이 다른 통신사로 이동하는 것보다 작다. 작다고 하니 조금 더 혜택을 늘려줄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적어서 안 되겠다고 거절한다. 그리니 결합할인이 되어 있었는데 일부상품을 해지하면 요금이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친절한 설명 뒤 사실은 협박이다. '너 돈 더내야 할걸?'

그럼 얼마를 더 내야 하는지 묻는다. 내가 질문을 할 때마다 조회를 해보고 답을 해주는데 어디에서 몇천 얼마가 할인되고 금액이 여기서 얼마, 저기서 얼마 변동되고 도무지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 내가 돈을 더 내는지, 덜 내는지 얼마를 더 내는지 알고 싶은데 그걸 한 번에 이해할 수가 없다. 도무지 통신사의 요금과 할인제도는 왜 이리 복잡한 것인지. 일부를 해지하고 남은 상품을 결합하면 내가 내는 돈이 크게 안 오르는 것 아니냐고 하니 그렇다고 한다. 대신 다시 결합을 하기 위해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신분증과 가족관계 증명서를 보내야 한다고 한다. '너 이 귀찮은 거 또 해야 돼.' 역시나 협박이다. 나는 통신사 고객센터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다시 전화를 걸어야 한다니 참 한숨 나오는 일이지만 그래, 당신은 해지상담원이니 결합업무는 아쉬운 내가 또 전화해야 되나 보다 이해를 해 본다. 끝까지 나의 해지 의견을 피력하는 데는 성공했다. 상담원은 못내 아쉽고 떨떠름한 듯이 해지절차를 밟아주었다. 마지막에는 살짝 감정이 상한 듯하다. 상담원도 사람이니 어쩔 수 없겠지.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한 아쉬움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당신을 위해 나의 의견을 바꾸고 싶지 않다. 좋은 이별은 없다고 생각하며 그냥 꿋꿋이 해지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다시 해지상담사가 말한 대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해지 후 남은 상품들의 결합을 요청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난관이다. 얼마로 요금이 변동되는지를 이 상담원 또한 매우 복잡하게 설명을 한다. 결합이 안되어 있다는데 패밀리 결합할인은 들어가 있고 뭐 이런 식이다. 할인금액이 인터넷, 핸드폰으로 분산되어 있는데 이게 각각 얼마씩 변동되는지를 알려주니 총액으로 설명이 되지 않고 복잡하기 짝이 없다. 사무실 인터넷과 제 핸드폰만 결합하면 요금이 어떻게 되나요? 남편 것까지 핸드폰이 두대이면 요금이 어떻게 되나요? 할인을 저한테로 몰지 말고 남편과 제가 나누면 어떻게 되나요?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조회를 하고 대기를 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열두 번은 더 들은 답답한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이 상담사에게 확인한 바에 의하면 남은 상품들을 결합해도 나의 요금은 할인이 감소해서 제법 오른다는 것이다. 앞의 상담원과는 또 말이 다르다. 결과가 맘에 들지 않으니 과연 상담원이 말한 것이 정확한지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그리고 해지 상담원은 지금 전화를 하라고 했는데 결합상담원은 해지 이후 다시 결합을 하라고 한다. 참 복잡한 데다가 두 명의 말이 다르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두 번의 통화를 마치자 피로감이 몰려온다. 역시 인터넷을 해지하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돈을 덜 내고 지원금을 받겠다는 고객의 욕망과 고객을 놓치지 않겠다는 기업의 본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순간이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복잡한 판 속에서 이리저리 휘저어지고 있노라면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다. 해지하겠다고? 너 불편하고 번거로울 거야, 손해일 거야 이런 허들을 뛰어넘어 겨우 빠져나온다. 뭐, 이미 해지신청은 했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조금 더 이익이면 어떻고 손해면 어떤가. 이렇게 또 살아가보는 거지. 3년 금방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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