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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님, 커피 한잔 사드릴게요

대충 사는 상담사의 일상

점심 먹고 사무실 근처에서 걷고 있는데 함께 일하는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상담사님, 커피 한잔 사드릴게요. 00 커피랑 00 주스 중에 뭐가 좋으세요?]

[ㅎㅎㅎ 00 주스에 당근주스요!]

나는 예전에는 이렇게 편안하게 답톡을 보내질 못했다.

상대방이 어떤 호의를 베푸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커피를 사준다고? 왜지? 나에게 뭐 부탁할 일이 있나? 내가 뭔가 고마울 일을 했나? 아니면 앞으로 내가 뭘 해줘야 하나?] 이런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뭔가를 받으면 꼭 갚아야 한다는 부채감도 가지는 편이다.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무거워 마음을 받지 않으려는 어리고 여린 성인아이가 내 모습이다. 


이제는 내 마음과 대화를 나눈다. 

[매니저가 나에게 커피 한잔을 사주고 싶어 하네. 별로 내가 받아야 할 이유는 떠오르지 않아. 앞으로 뭔가 부탁할 일도 예상이 되지 않고. 어떤 상황과 상관없이 그냥 매니저가 나에게 호의를 표현하고 싶은 거 같아. 우리 사이는 그렇잖아. 나도 매니저를 좋아하고 매니저도 나를 좋아하는 거 같아. 그동안 나도 매니저를 싫어하진 않았으니 매니저도 그런 마음이겠지. 매니저가 주는 마음을 즐겁게 받지 뭐. 우리 사이에 커피 한잔쯤은 얼마든지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지. 공짜 소고기는 없고 호의는 돼지고기 까지라는 말도 있으니까 커피쯤은 전혀 겁낼 필요 없어. 즐겁게 마시고 매니저에게 감사하자. 우리 사이는 커피 한잔쯤은 이유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사줄 수 있는 그런 사이인 거야. 매니저의 마음을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자. 그럼 뭘 먹지? 커피보다는 당근주스를 선택하겠어.]


대충 이런 마음이 순식간에 휘리릭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 문제는 커피 한잔이 아니라 '관계'였다. 

모든 관계는 아픔을 동반한다. 

관계의 아픔에 익숙하지 않아 멀찍이 한발 떨어져 있는 편이었던 나는 호의를 받지도 마음의 빚을 지기도 싫어했다. 그것이 친밀함에서 멀어지고 거리감을 낳았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는 참이다. 


낙천주의와 믿음은 친밀감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친밀해지기를 원한다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p.66]


내면아이가 어릴 때는 도망감으로써 여리고 약한 아이를 보호했다. 하지만 아이가 조금씩 자라고 나이를 먹고 힘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에게 한 발짝 다가갈 용기가 생긴다. 행여 상대방이 나를 다치게 하더라도 나는 조금은 나를 방어할 수 있으리라. 나를 믿으니 상대방을 조금 더 믿게 되는 셈이다. 

[상대방이 호의를 베풀고 싶어하면 받지 뭐, 다음에 기회가 되면 나도 베풀면 되지.]

이 간단한 문장에는 나를 믿고, 상황을 믿고, 상대방을 믿는 3가지의 믿음이 있다. 

내가 줄 수 있음을, 내가 대처할 수 있음을 믿는 나에 대한 믿음, 상황이나 환경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고 기회는 올 것이라는 믿음, 상대방 역시 나의 마음에 반응할만한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제 나는 상처받을까봐 나를 꽁꽁 싸매왔던 불안을 내려놓고 한걸음 다가가보기로 한다. 

커피 한잔 얻어먹으면서 참 사설이 길었는데, 어쩌겠는가 이게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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