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훔쳐가는 행복도둑을 잡아라
뚝딱뚝딱, 매일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매일 한 번쯤 집에 가서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이자 낙이다. 황폐하리만큼 싹 다 철거를 했던 구축 아파트는 새 창호를 샤방샤방하게 끼우고 목공 작업도 마무리하고 이제 타일까지 바르니 제법 새 집에 대한 기대감이 솔솔 올라온다.
설렘과 신기함을 느끼며 공사 중인 집 이곳저곳을 돌아보다 주방창을 보는데 "어랏?" 싶다. 확장한 주방창과 작은방은 분명 불투명 유리로 하기로 했던 거 같은데... 작은방은 불투명으로 잘 설치되었는데 주방창은 아무리 살펴봐도 주방창은 투명이다.
'어허... 이런 난감할 데가.'
내가 깜박깜박 증상이 심해지긴 해도 특정 부분의 지적 영역에서는 그래도 아직 총명함이 남아있다. 나의 기억력 상으로는 분명히 인테리어 대표님이 투명창, 불투명창 여부를 물었을 때 이중창으로 된 부분은 불투명으로 하기로 했고 대표님도 그게 좋다고 동의했는데 말이다. 주방창이 투명일 경우 이곳은 확장한 곳이어서 외부의 시선을 전혀 차단할 수가 없다. 주방을 너머 거실까지 뒷동에 노출되는 뒷동뷰인 데다가 저층이라 우리 가족의 움직임과 생활상이 낱낱이 생중계될 참이다. 블라인드로 가려야 하나 싶었는데 이 창에는 블라인드를 할 계획도 없었고 예전에도 블라인드 없이 지냈던 창이다.
불안이 높은 사람은 이런 예상치 못한, 대략 난감한 돌발상황에 몹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성인아이 기질이 있으면 자신감 있게 대처하고 해결하기가 어렵다.
우선 발생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정리해 본다. 불투명창이 설치되기로 했던 곳에 투명창이 설치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창이 불투명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만약 불투명한 창으로 바뀔 수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의 불안에 대처하는 마음가짐은 첫째, 차라리 최악의 상황을 예상해 본다. 이미 투명창이 설치되었고, 그 창을 블라인드로 가릴 방법이 없어 우리 가족이 그냥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절망할 일은 없다. 최악이라고 하지만 집이 부서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죽는 것도 아니고 고작 창문이 투명인 정도인 것이다.
불안에 대처하는 두 번째 방법은 내 자아와 의지를 내려놓는 것이다. 나의 뜻은 불투명한 창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꼭 내 의지가 관철되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것은 낙심과 불행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도 시뮬레이션 해보았고, 내 뜻도 내려놓기로 했다면 이제 제법 평온해진 마음으로 업자에게 전화를 건다. 차분히 상황을 알리고 뜻을 전해본다. 창이 이미 설치되어 교체가 어려우면 시트지 작업으로 보완해도 생활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 같다고 한 발 물러난 내 입장도 덧붙인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인테리어 대표님은 시트지 작업은 집을 버린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신다. 간지 나는 것을 좋아하시는 자존감이 높은 대표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고 알아보겠다고 하시고는 전화를 끊는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없다. 내가 할 일은 다 했고 시간의 흐름에 맡긴 채 기다릴 뿐이다.
한나절이 지나 대표님이 연락을 주셨다. 불투명 창으로 교체하겠노라고.
그게 가능한지 놀랍고 한편 감사하다. 그리고 이 상황이 이렇게 편안하게 흘러가는 것이 놀랍다.
예전의 나라면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바들바들 떨면서 따지고 분노하고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불안은 내가 상황을 통제하려는 데서 오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금씩 알아차리고 다르게 살아보는 중이다. 내 힘으로 하지 않고 맡기고 사는 삶이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처럼, 놀랍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