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삼키며 버티는 나이

힘들다고 말하는 게 더 힘들어진 나이

by 냠냠

어느 순간부터 말을 멈추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힘들다고 말하면 위로가 돌아오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은 내가 한마디 하면

상대가 더 지쳐 보인다.


그래서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놓으면 돌아오는 말은

“갱년기라서 그래.”

“원래 네가 늘 그러잖아.”


스스로 버티는 게 아니라

갱년기 증상이 늘 나의 성격이었다고

가족들은 말한다.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그 말은 이상하게

내 마음을 지우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점점 말을 줄이고,

감정을 삼키는 일이 많아졌다.


어디 하나 놓을 곳이 없는 시기


혼자 차박을 하면 마음이 위로된다길래

한 달 동안 준비해 네 번쯤 떠나봤다.

하지만 혼자는 무서워서

딸이나 남편을 핑계로 함께 나섰고

돌아오면 오히려 더 피곤했다.


차 안엔 짐이 쌓여 있고,

내 마음도 함께 구겨졌다.

겁 많은 나는 결국 혼자 떠나지 못했고

그래서 또 멈췄다.


골프도 도전해 봤다.

국민스포츠라지만

인원 맞추기, 비용, 장비…

도대체 ‘국민’의 문턱이 이렇게 높았나 싶은 순간들.

‘내가 이걸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발걸음이 또 멈춘다.


배움도 여러 번 다시 시작했다.

배우면 삶이 풍부해진다길래

여러 가지를 해봤지만

돌아보면 내 곁에 남아 있는 건 거의 없다.

결국 수입과 연결될 때만

나에게 배움은 ‘지속할 이유’가 되었다.


50대는 책임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나이


함께 일하는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왜 갈수록 돈이 더 많이 들죠…?”


결혼 앞둔 큰딸,

유학 막바지의 둘째,

사업하는 남편,

그리고 양쪽 부모님.


늘 활기차고 여유 있던 분인데

그날은 순간, 무너져 보였다.


정말 그렇다.

50대는 인생에서

돈이 여러 번 크게 필요한 나이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자립’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부모님은 80대, 90대에 접어들며

요양과 병원비가 현실이 된다.


그러면서도 나는

일하고, 챙기고, 돕고,

어디 하나 놓을 수 없다.


고전이 더 깊게 꽂히는 이유


나는 잘 해낼 줄 알았다.

내 성격이라면,

내 방식이라면,

남들보다 조금 더 지혜롭게

이 시기를 넘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놀라울 만큼 평범하게 흔들린다.

여느 50대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 따라 쇼펜하우어, 장자, 노자 같은 고전들이

유난히 마음에 깊게 들어온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

“붙잡으려 할수록 고단해진다.”

“있는 그대로 흘러가도 된다.”


이런 문장들이

눈에, 귀에, 마음에 오래 머문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다.


정말 이렇게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럼에도 오늘의 나는 여전히 나답게


철학을 읽으면 잠시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려놓는 법을 배운 것 같다가도

막상 일상으로 돌아오면

나는 또 똑같이 산다.


생각하고, 걱정하고,

붙잡고, 해결하고,

어디 하나 놓지 못한 채

내 자리를 지키며 산다.


아마 이것도

나의 방식이고,

나의 용기이고,

나의 삶일 것이다.


50대는

아등바등이라 부르든,

성실이라 부르든,

책임이라 부르든,

그냥 지금의 자리에서 힘껏 살아내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전의 한 줄에 기대며,

다시 똑같은 하루를

그러나 조금 더 단단하게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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