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며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
내 나이 먹도록 나는 늘 통통과 뚱뚱 사이를 오갔다. 먹는 걸 좋아하고 식탐도 많았으니까. 그런데 정작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풀떼기다. 가을배추, 아삭한 무, 샐러리, 토마토, 패션프루트… 누가 보면 다이어트하는 사람의 식단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늘 ‘양’이었다.
내가 “풀만 먹는데 왜 살이 찔까?” 하고 말하니,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소도 풀만 먹어. 근데 많이 먹잖아.”
순간 웃음이 터지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 툭 박혔다. 맞다. 나는 많이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뷔페만 가면 호박죽으로 식사를 시작한다. 그것도 다섯 그릇 이상. 고기나 식사류는 건드리지도 않고 호박죽 앞에서 이미 승부가 끝난다. 호박만 보면 행복한 사람, 바로 나다.
요즘은 두유제조기까지 생겼다. 늙은 호박, 단호박, 검정콩을 갈아 따뜻하게 마시며 하루를 위로한다. 그런데 몸은 예전 같지 않다.
예전엔 열 그릇도 거뜬했는데
이제는 한 그릇만 먹어도 금세 배가 차고,
먹는 양은 줄었는데 살은 더 쉽게 찐다.
그리고 먹으면 어딘가 아프다.
굶으면 빠지지만, 굶으면 또 아프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느 날 문득 멈춰 세웠다.
몸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 몸을 위해서라도 마음이 먼저 건강해야 한다는 걸.
스트레스는 마음에만 쌓이는 게 아니라
몸속에 염증을 만들고,
그 염증이 통증과 치료로 돌아온다.
조심해야 할 것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그래서 50대의 삶부터는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이 ‘선택’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출발선’이 된다.
몸은 작은 신호에도 민감해지고,
마음은 작은 스침에도 금세 흔들린다.
그러니 더 천천히, 더 부드럽게, 더 의식적으로
나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글을 쓰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쓰다 보면 자꾸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처럼 보였고,
상대에게 바라는 말만 가득한 사람 같아서
나 스스로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TV 속 이금희 아나운서를 보는 순간,
말투도 자세도 표정도
사람을 편안하게 감싸는 따뜻한 결이 느껴졌다.
그때 깨달았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누군가 나에게 와서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함을 얻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결국 내 마음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된다.
쓰는 과정이 곧 자기 성찰이라는 걸
요즘 더 깊이 느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천천히 나를 돌본다.
언젠가 내가 맞이할 그 시간에—
이금희 아나운서처럼 어디에서든 꼭 필요하고,
곁에 있으면 편안한 사람이 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