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요즘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50이 되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는 생각.
조금은 여유로워지고,
조금은 단단해지고,
적어도 예전보다 나 자신을 더 잘 챙기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50대에 들어와 보니
달라진 건 마음보다 몸이었다.
예전엔 생각하면 바로 움직였다.
운동이든, 정리든, 새로운 시도든
몸이 먼저 따라와 줬다.
조금 무리해도 하루쯤 지나면 괜찮아졌다.
이제는 다르다.
뭔가를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몸이 먼저 묻는다.
“그걸 지금 할 수 있겠어?”
유튜브를 켜면
다이어트, 복근, 하루 10분 운동 같은 영상이 끝없이 나온다.
보다 보면 괜히 나만 뒤처진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따라 해 본다.
그런데 몸이 안 움직인다.
그리고 꼭 어딘가가 아프다.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몸이 먼저 알려준다.
생활의 작은 목표들도 그렇다.
옷장을 비우겠다고 마음먹고,
박스를 정리하겠다고 다짐하고,
가구 배치를 바꾸겠다고 적어둔다.
큰 꿈이 아니라
그냥 오늘의 생활을 조금 가볍게 만드는 일들인데
그마저도 예전처럼 ‘바로’ 되지는 않는다.
주식 공부도 한때는 그렇게 열심히 했다.
매일 듣고, 메모하고, 따라가면
나도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손이 멈춘다.
정보는 많아지는데 판단은 더 어려워지고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일이 버거워진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60이 되면 배낭을 메거나
차를 타고 실생활을 하듯 외국을 떠돌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장면을 떠올리다가도 마음이 먼저 주저앉는다.
의욕이 줄었다기보다
힘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주변을 보면 더 실감이 난다.
한때 산행을 즐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동네를 벗어나지 않는다.
행동반경이 눈에 띄게 좁아진다.
그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이호선 교수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여유 있는 사람은 백화점 옆에,
보통 사람은 복지관 옆에 살아야 한다”는 말.
대형병원 옆이 아니라는 그 말이
처음엔 의아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병원은 가까이 있다고
바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몸이 아프면
집 앞 병원도 멀어진다.
문을 나서는 일부터가 큰 결심이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건
병원과의 거리보다
오늘도 내 발로 걸을 수 있는지,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지다.
엄마를 보며 그 생각은 더 선명해졌다.
60대 중반까지 자영업을 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우리 곁으로 오셨을 때는
처음엔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로가 부담이 되었고
엄마는 점점 안으로 갇히셨다.
그리고 결국 치매 진단.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신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이 듦은 생각보다 빠르고
생각보다 조용히 삶을 바꿔버린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요즘은
‘50부터 꿈꿀 수 있는 것’과
‘50부터는 내려놓아야 할 것’을
구분해 보게 된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시간을 되돌려 40대로 돌아간다 해도
아마 나는 똑같이 살았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속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 선택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데려왔으니까.
후회라기보다는
이해에 가깝다.
그때의 나를 이제야 받아들이게 된 느낌이다.
50이 된다는 건
꿈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꿈의 모양이 바뀐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멀리 가기보다
덜 아프게,
조금 느리게,
그래도 계속 살아가는 쪽으로.
요즘 내가 꿈꾸는 건
대단한 변화가 아니라
내 몸을 인정하며
오늘을 무사히 건너는 일이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
가장 현실적인 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