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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Apr 25.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7

2024.4.25 엄원태 <마음을 얻는다는 것>

다섯 시 삼십 분. 창밖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둠이 물러가네요. 왠지 저 흘러가고 흘러들어오는 시간이 바로 손에 잡힐 듯한 느낌이예요. 하긴 시간을 손에 쥘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시간이 형체를 가진 물건처럼 가질 수 있다면...! 어제는 또 어느 시인의 시집 한권을 강독하는 ‘줌 시 강독’에 참여했어요. 3월과 달리 어제는 학생들의 수업이 거의 없어서, 시낭독 4시간(정확히 4시간 15분)을 온전히 자리했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달처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네요. 저녁 7시에 시작, 25명의 독자들(심지어 미국에서 함께 한 분들도 3명)이 읽었던 시는 엄원태 시인의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2013 창비>입니다. 저는 두 편의 시를 읽었는데요. 모임 전, 시를 읽으면서 만난 시인은 ‘분명 아픈 사람일거야 ’ 정도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아파오고 있는 분인줄 몰랐습니다. 현재 70살, 33살부터 아프기 시작한 삶이 지금도 이어지는 그의 삶. 아픈만큼 시의 깊이도 깊어지는 걸까요. 강독 프로그램 참여자로서는 병아리인 저와 달리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시인의 삶과 시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초저녁이 깊은 밤으로 이어져도 누구하나 힘들어하지 않고 시 강독과 시인과의 대화에 몰두하는 모습은 참 배움의 현장이었네요. 저 역시도 혼자 읽을 때는 어렵게 느껴졌던 시들도 있었는데,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듣고 시인의 말씀을 들으니 저절로 안개 걷히듯 분명해지기도 했지요. 시인의 말씀 중 ‘가장 적은 글 속에 많은 말을 넣는 것이 시’라고 한 그의 뜻을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어제밤 시를 향한 제 열망과 배움의 의지를 이해하고 기다려준, 남편과 복실이, 그리고 제 의자에게 고맙다고 속으로 속으로 말했답니다. 10년 전에 이 시집을 읽었더라면 지금의 제 모습이 달라졌을까요? 라고 스스로 물어보니, 전 그저 웃지요... 엄원태 시인의 건강을 기도합니다. 제가 어제 낭독한 시 중, <마음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마음을 얻는다는 것 – 엄원태     


십년이 넘는 공부 끝에야

암컷의 마음을 얻어 교미할 수 있는 새가 있다    

 

코스타리카의 긴꼬리매너킨은 탱고 스텝의 달인들

그들의 일생은 가무(歌舞)에 바쳐진 셈

소년 매너킨은 생후 오년째부터 스스로 연마하여 몸을 만들고

육년째도 여전히 독학으로 노래와 춤 연습에 전념하다가 

칠년째, 마침내 갈고닦은 노래로 스승의 마음을 얻어 

문하생 생활을 시작한다면 그건 대체로 운이 좋은 편,

이렇게 해서 사부를 모시고 또다시 십년 공부     


드디어 새침한 암컷 앞에 서면

사부가 먼저 절로 예를 갖추고

듀엣 노래와 솔로 나비춤으로 몸을 달군다

결정적 순간이 오면 등넘기 탱고가 시작되는데,

등넘기춤은 여느 탱고처럼 절묘한 타이밍과 박자가 생명이다     


암컷이 필생의 수십분짜리 이인조 춤 공연에 매혹되면

사부는 마침내 암컷의 마음을 얻게 되고,

제자는 비로소 조용히 물러나 독립하여

자신의 제자를 구하러 정처 없는 십년 공부 스승의 길을 떠난다.     


마음을 얻기란 그런 것

적어도 십년 공부는 기본이다  

  

<참고> 긴고리 매너킨의 탱코춤을 익혀가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추천한다고 시인이 말씀..가히 환상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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