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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Apr 26.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8

2024.4.26 이준관 <구부러진 길>

말랭이 마을이 분홍빛 꽃 잔디로 화사롭습니다. 앞산의 벚꽃이 드리우던 연분홍 면사포는 걷히어 어느새 초록등선이 새초롬하게 앉아있더군요. 병아리가 물 한모금 먹다 하늘 한번 쳐다보는 격으로, 책 한 줄 읽다가 창밖풍경 한번 보고, 또 한 줄 읽다가, 문우들께 글 사진 한 장 올리다보니, 책방지기의 소확행 시간이 접혀지더군요. 금주부터 한달 간 글쓰기 수업 과제 중 하나가 ‘피천득시인의 <인연>과 박완서작가의 <호미>라는 작품을 읽고 자기 글 쓰기’가 있는데요. 저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어제 책방에 도착한 책 중, 시인가수라는 별칭이 있는 산울림 김창환씨가 쓴 에세이 <찌그러져도 동그라미 입니다>가 있어요. 짧은 글을 읽기 좋아하는, 그러면서도 감성적 울림의 글을 좋아하고 소소한 행복의 즐거움을 찾는 독자들에게 제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백 퍼센트 완벽한 일상이 없고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릴 수 없으니, 한두 개라도 맘에 드는 동그라미가 있으면 그 하루는 동그라미 인생이라고 말하더군요. 또 찌그러져 있고, 기울어져 있어도 동그라미는 동그라미라고 말하는 작가. 오늘의 회색빛 하늘에서 어제의 푸른 하늘만 찾지 말고, 그 뒤에 숨어있는 내일의 또 다른 빛의 하늘도 너무 기다리지 말고, 지금 이순간, 하늘색을 즐기자고 하더군요. 그의 부드럽고 평온한 목소리가 직접 들려오는 듯해서 저절로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답니다. 오늘이 마치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은 올해 처음 열리는 말랭이골목잔치. 골목마다 여리고 작은 꽃들이 많아서 아무곳이나 철벅거리며 다닐수가 없답니다. 조금만 자세히, 내려다보면 꽃들이 발아래 가득하니까요. 도대체 어디서 이 모든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날아왔는지 그저 경이로울 뿐입니다. 저는 판넬, 풍선, 학생들이 보고 쓰면 좋을 동시집과 엽서를 준비해야겠어요. 오늘은 제가 자주 애독하는 시 중 말랭이와 어울리는 시, 이준관시인의 <구부러진 길>다시 들려드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구부러진 길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무꽃
말랭이마을 화단
괭이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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