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번 - 장영희에세이

2020.2.4

by 박모니카

글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영희교수는 아름다운 에세이스트다.

하물며, 영문학도인 나에게는 더 말할나위 없이 본 받고 싶은 사람이다.


처음 만났던 <문학의 숲을 거닐다>, 주옥같은 영미시 모음집 <축복><생일>, 투병하며 마지막까지 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그리고 2000년 샘터 발간 <내생애 단한번> 등 말 그대로 문학 전도사 라는 별칭은 틀림이 없다.


지난 설날, 연휴에 읽을 책을 살피다가 책꽂이에 있는 <내생애 단한번>을 꺼냈다. 샘터 월간지를 구독하던 터라, 얼마전 100쇄 발간기념으로 다시 나온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으면서 집에 있는 장교수의 작품들을 모아서 한켠에 놓았었다.


생전에 작가도 여러번 말했지만, 우리나라 영문학계의 대부, 장왕록 교수의 딸이자, 중고교 주요 교과서의 집필자이다. 장애인으로서의 삶의 여정에 대해선 너무도 많이 화자 되어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좋겠다.


작가는 늘 겸손하다. 특히 글쓰기에서는 그렇다.

"생활반경과 경험이 제한되어 있어서 내 글의 소재는 대부분 나 자신이다. 문학을 공부하지만 창의력이 부족하여 나 자신 외에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글은 곧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쓰는 글은 바로 나이며 발가벗고 일반 대중 앞에 선 나 이다."


장애의 몸으로 일반 대중에게 교수로서, 작가로서 새겨질때 까지, 그녀가 보인 인생의 투지와 열정은 보통 사람이 감히 넘 볼수 없다. 특히 에세이스트로서의 그녀의 글은 솔직함, 투명함, 고귀함, 아름다움, 당당함이 늘 함께 있다. 그래서 사후 10년(1952-2009)이 넘은 지금도 그녀의 글은 세대차이를 느낄 수 없다.


2000년에 발간된 <내생애 단한번>도 글 속에서는 나의 대학시절과 결혼 전의 젊은 날도 보인다. 이제 대학생이 된 딸에게 들려주어도 공감되는 아름다운 글들로 가득하다.


- 진짜가 되는 길 - (P.28)


평화의 기도 중,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고 사람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사랑을 받기보다는 주는 사람이 되라. 그리고 이왕 주는 사랑이라면 타산적이고 쩨쩨하지 않게 '제대로'된 사랑을 주라.'

나 자신도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면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쭙잖지만 그래도 가끔은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들어 나는 가끔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시큰둥하게 여기거나 그 사랑으로 인해 오히여 오만해진다면 그 사랑은 참으로 슬프고 낭비적인 사랑이다. 사랑하는 일은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요한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진짜'가 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모난 마음은 동그랗게, 잘 깨지는 마음은 부드럽게, 너무 비싸서 오만한 마음은 겸손하게 누그러뜨릴 때에야 비로소 '진짜'가 되는 것이다.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할 줄 아는 진짜 됨을 위하여!


-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 (P. 86)


"중고생에게 명작하나를 소개하라면, 헤밍웨이의 <노인과바다, 1954년>를 추천한다. 등장 인물이 마음에 들고, 문체가 아름답고 강력해서, 감동과 여운이 특별해서 아끼는 작품이다.


거대한 물고기과 인간의 끈질긴 대결에서 헤밍웨이는 숭부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최후까지 위엄있게 싸우는가를 보여준다. 서로가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영예로운 싸움.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물고기와 싸우며 노인이 되뇌이는 말이 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그러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노인이 죽은 물고기를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해 상어와 싸우며 했던 말,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It is silly not to hope. It is a sin.)라는 말이다."


-보통이 최고다- (P.158)


우리 집에는 딱히 '가훈'이라고 정해 놓은 것이 없었지만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 오라면 그래도 항상 아버지 서재에 붙어 있는 '선내보(착한 것 속에 보물이 있다)라는 말을 적어 가곤 했다.


부모님의 교육관은 우리를 '착하고 건강하고, 보통인 사람들로'키우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우리 모두 착하고 건강하고 보통으로 잘 자랐다. 딱히 특별한 추미도 재능도 관심도 없었고 막상 대학에 갈때 선뜻 선택할 전공이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영어를 끔찍하게 싫어하지는 않으니까, 영문학을 전공한 아버지, 언니, 오빠 덕분에 그냥 영문학을 택했다. 내 인생이야말로 '보통밖에 안 되는 것'의 탁월한 본보기다. 보통밖에 안 되는 딸이 보통밖에 안되는 글을 쓰느라 진땀 흘리고 있은 걸 아시는지, 어머니가 거실에서 전화로 조카가 기말고사를 망폈다고 하소연하는 동생에게 큰 소리로 말씀 하신다. "야, 망쳤으면 어떠냐. 그저 중간치기만 하면 된다. 보통이 최고다!"


작가 박완서의 "핸디캡을 숨기려고도, 그렇다고 과장되게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는 성숙함에서 오래된 문학의 향취가 배어난다"는 말은 사실이다.

또 동화작가 정채봉의 "명쾌한 사고와 가식을 꿰뚫는 지성의 눈, 글의 행간에서 전해오는 참사람의 온기에 매료된다"는 말은 진실이다.


작가가 좋아하는 작품 고전명작문학<노인과 바다> 처럼 오랫동안 함께 할 장영희 에세이스트의 에세이.

그녀의 해 맑고 아름다웠던 미소가 그립다.


장영희에세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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