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밥상 -공지영

2020.1.22 독후일기5

by 박모니카

작가 공지영, 사회적 이슈 현장에 꼭 한 꼭지씩 드러내는 작가. 때론 공감하고 때론 그렇지 않다.


젊은 날, 소설 <고등어>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은 후 영화 '도가니'를 통해 그녀를 만났다. 그 후, 읽진 않았지만 산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의 출간 얘기도 인터넷문자를 통해 알고 언제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지나쳤다.


2015년 <딸에게 주는 레서피>는 딸들에게 보내는 삶의 응원과 사랑메시지 라는 코멘트를 보고 사서 읽었다. 그리고 오랫만에 공지영의 에세이 <시인의 밥상>을 읽었다.

2016에 출간된 책인데, 중고서점에 가서 에세이 칸을 들춰보다가 만났다. 공지영, 이름 석자보고, 시인의 밥상이라는 제목이 좋아서 읽고 싶었다.


작가의 후기에 따르면, 버들치 시인 박남준의 병원비에 도움이 되길 바란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단다.

'시도 못쓰는 시인이 에세이 써서 팔아먹는다'는 말이 듣기 싫다는 버들치 시인에게 공지영 작가가 말했단다. "내가 쓸테니, 시인은 나한테 요리나 해줘." 그렇게 시작된 에세이 글.


에세이를 구상하고 마무리까지 1년의 시간과 욕심없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세상, 그리고 시인의 밥상과 수묵화보다 더 담백한(작가의 표현엔, 슴슴한) 사진들이 들어갔다.


1부, 엄마의 따뜻한 손길 같은 것- 식물성 밥상이 가르쳐주는 인생의 원리 중(P.19)


"나도 호박을 키우는데 잎만 무성해" 공작가가 말했다.

"거름이 너무 많아도 농사가 안돼. 쉽게 말하면 먹을게 많은데 왜 애쓰며 꽃피우고 열매를 맺겠느냐고. 순지르기라는 걸 해서 첫 번에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확 보여줘야 하는거야. 그러면.아, 세상이 그리 목록지 않구나. 우리 세대는 힘들 것 같으니 다음 세대에 기대를 해보자'하고 호박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지. 사람도 똑같아." 호박전과 호박국을 만들며 버들치시인이 대답했다.


작가는 생각했다. '고통, 역경, 이런 것들이 우리 생에 필요하다고. 심지어 아주 중요하다고. 반드시 그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숙한다고. 성장의 거름이 고통이라는 진리였다는 것을 식물인 호박에 까지 이르는 우주적 원리였단 말인가.'라고.


나도 이에 더불어 생각했다. 작년 여름부터 시작된 내 작은 텃밭의 호박 잔치를 단순히 기쁨과 즐거움으로만 바라봤던 내 자신도 반사되었다.


2부, 지상의 슬픈 언어를 잊는 시간 -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사랑이 필요할까(P.135)


'시인은 먼저 큰 조개의 살을 발라 다지고, 양파왕 당근, 파란 고추와 붉은 고추를 아주 잘게 다졌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양파, 당근, 풋고추 등을 볶다 채소들이 겅의 숨이 죽을 때쯤에 역시 다져 좋은 조갯살을 투척해서 살짝 볶는다.'

"알겠지, 꽁지야(공작가 호칭). 잘 익는 것은 나중에, 잘 안 익는 것은 먼저. 그게 평등이지."


요리를 보고 평등이란 말은 쓰는 시인이 "젊은 친구들이 좋아해서" 라며 채소와 조갯살로 버무린 속을 소복하게 엊은 조개를 찜통에 가지런히 넣고 일부에 모차렐라 치즈를 올려온 밥상.


그 밥상에 윗 세대의 권위도 없고 아랫세대의 철부지도 없이 누구하나 서운하지 않도록 평등하게 밥상을 차려온 시인과 사람들이 웃고 또 웃으며 사람에게 필요한 사랑의 크기를 상상 할 수 없었다.


3부, 벗꽃 흐드러진 계절에 삼킨 봄 - 소유가 전부가 아닌 곳 욕망이 다 다른 곳(P.232)


"이게 뭐야?" "그거 파란 토마토 장아찌야."

'오이도 아니고 무도 아니고 연근도 아닌 것이 아삭하며 새콤 칼칼하고 간간 슴슴하게 맛이 있었다.' 라고 공작가가 말했다.


'지난 가을 서리가 다 내리게 생겼는데 마지막으로 토마토가 열린거야. 보나마나 그 날 밤 서리가 내리면 익지도 않고 토마토가 그냥 죽게 생겼더라고. 그래서 담았지.' 라고 시인이 말했다.


지리산에 사는 사람들, 욕심이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지혜를 먹고 산다. 그래서 자연이 평생의 밥상이 되어주는가 보다 생각했다.


나의 일상에 가장 큰 적은 식탐이다. 양이 많아서가 아니다. 지혜롭지 못해서이다.

어떻게 하면 비우면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이론서가 아닌 체험서로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고민 중에 상 고민이 따로 없다.


4부, 시린가슴 데우는 별 같은 '사람 밥상' - 우리는 언어를 얼마나 배반하는가(P.301)


'시인은 무안 낙지로 세 가지 요리를 했다. 낙지 탕탕이. 낙지 발을 탕탕 쳐서 들기름 적신 소금에 그것을 찍어 먹으면 느끼는 놀라운 식물성 식감.

그리고 다시마와 양파껍질로 국물을 내어 어간장으로 간을 한 연포탕, 분명 뜨거웠지만 아주 시원한 맛.


마지막으로 야채를 볶을때 기름 대신 다시마국물을 넣어서 담백하고 순한, 양배추와 양파 만들기, 그 위에 각종 양념, 그리고 낙지를 슬쩍 볶아낸 낙지볶음.' 공작가의 설명이다.


어떤이가 말하길, "너 그 나물 이름 아니? 뭐더라, 연탄집겐가?" 하니 친구 왈, "음 부지깽이 나물"이라 했단다.

작가는 이를 두고 언어는 얼마나 우리를 배반하며, 우리는 얼마나 언어를 배반하는가 라고 했다.


그렇다. 언어가 인간의 최고의 창조물이라고 하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늘위의 별, 사막의 모래, 바다의 파도, 산위의 공기, 꽃들의 향기, 겨울날 무채색 설야, 가고오는 비의 소리, 신에게 향하는 사람의 간구한 마음.


일년간, 시인의 밥상을 받으며 얻었던 사람과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작가는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땅에 뿌리 박은 모든 것은 땅에서 길어 올린 것들을 도로 내놓고 땅으로 돌아간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린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다."


지난 며칠간 밤마다 한 두 시간을 정말 행복한 꿈을 꾸게 했던 책이다. 글로 시인의 밥상을 받으니 야식을 먹은 배와 같았다. 그러나 더부룩하지 않고 오히려 장 트럼이 시원했던 배 였다. 욕심 없는 사람들이 내 뿜는 청정한 공기방울들이 내 삶도 지혜로워지라고 종종 찾아 주었던 책이었다.

공지영 버들치시인과 밥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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